서영제의 노무현 시절 수사 비화⑩
한화갑 민주당 대표, 수사에 협조해 일단 귀가시켰는데 바로 당사로 직행
민주당사 정문 봉쇄, 구속영장 집행 실패…"나의 명백한 판단 착오"
민주당 핵심 인물이던 한화갑 의원이 당시 서울지검에서 수사를 받았음은 앞에서 거론한 바와 같다. 그러나 결정적인 혐의 사실을 확보하고도 사건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말았다. 순전히 판단착오로 인한 나의 불찰이었다.
그 역시 금품수수 혐의를 받고 있었다. 서울 여의도 주상복합 건물인 트럼프월드의 시행업체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였다. 그것도 대통령 후보 경선자금 명목이었다. 문제의 시행업자에 대해 고소·고발이 적잖이 접수되어 그것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2004년 1월 29일자 인터넷 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대우건설 트럼프월드 시공사로부터 대통령 후보 경선자금 명목으로 6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화갑 민주당 의원에 대해 조만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지검 특수2부는 한 의원을 소환해 6억원을 수수했는지 집중 조사 중이다.’
그 역시 금품수수 혐의를 받고 있었다. 서울 여의도 주상복합 건물인 트럼프월드의 시행업체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였다. 그것도 대통령 후보 경선자금 명목이었다. 문제의 시행업자에 대해 고소·고발이 적잖이 접수되어 그것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2004년 1월 29일자 인터넷 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대우건설 트럼프월드 시공사로부터 대통령 후보 경선자금 명목으로 6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화갑 민주당 의원에 대해 조만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지검 특수2부는 한 의원을 소환해 6억원을 수수했는지 집중 조사 중이다.’
- 2004년 1월 당사에서 검찰의 경선자금 수사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한화갑 민주당 의원.
물론, 문제는 있었다. 당내의 대통령 후보 경선자금을 문제 삼는다면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대통령 선거자금을 건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회창씨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논리적 압박이 제기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한화갑씨 경우만 경선자금 문제로 수사해서는 안 된다며 요로에서 수사중단 압력이 들어왔다.
그러나 한 의원의 경선자금 수수에 대하여는 이미 증거가 확보되었기 때문에 강제수사를 미룰 수가 없었다. 그 후 노 대통령이나 이회창씨의 경선자금을 수사하여 실체가 드러난다면 차례대로 사법처리하면 될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 경선후보들 모두에 대한 수사를 마친 다음 한꺼번에 사법처리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러 수사중단 압력을 물리치고 한화갑씨에 대해 강제수사의 첫 단계인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표적수사를 한 결과가 아니라 하이테크 하우징이라는 시행사 비리를 수사하던 중 발견된 것이었다.
“한 의원 태도가 고분고분하다”는 강찬우 검사(현 법무부 법무실장)의 보고
그런데, 수사를 받는 한 의원의 태도가 너무 고분고분하다고 당시 수사팀의 강찬우 검사(현 법무부 법무실장)로부터 보고를 받고는 의아스러울 뿐이었다. 오히려 감동을 받았다고나 할까. 당 대표를 지낸데다 현직 국회의원 신분이라면 대체로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고함을 치고 행패를 부리기 일쑤인데도 그는 공손한 태도로 수사에 협조하는 모습이었다. 수사팀이 나름대로 그를 인격적으로 예우해 주었던 것도 그런 때문이었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는 법이었다.
인격적인 예우라고 해야 별것도 아니었다. 나는 수사팀에게 조사를 마치고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대신 일단 귀가시켰다가 다시 소환해 구속 절차를 밟으라고 지시했다. 밤샘 조사를 받으면서 세수도 못하고 수염도 덥수룩한 모습으로 취재기자들의 카메라 앞에 나서도록 하는 경우만은 피하도록 하려는 뜻이었다. 나로서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그가 수사에 협조하는 모습으로 미루어 다른 불상사를 일으키리라고는 전혀 예상도 못했던 것이다.
- 2004년 2월 1일 밤 서울 민주당사 앞에서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집행하려는 검찰 관계자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민주당 당직자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민주당사로 직행한 한화갑 의원, 그리고 민주당사 앞의 대치
바로 그것이 실수였다. 한 의원이 검찰청에서 풀려나자마자 곧바로 민주당사로 직행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농성에 돌입했다. 그때서야 아차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법원으로부터 사전영장을 발부 받았으나 당원들이 당사 입구에서부터 대치하는 바람에 강제 집행도 어려웠다. 그러나 저항한다고 놔두고 고분고분한 사람들만 구속이 집행된다면 공정성과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사회적으로 힘없는 서민만 구속시킨다는 비난을 들을 만도 했다.
언론은 2004년 2월 1일 당시 상황을 이렇게 보도했다.
‘서울지검은 민주당사로 수사팀 22명을 파견했다. 당원 및 지지자 100여명은 지난 1월 31일과 같이 1일 오전부터 2개조로 나눠 정문을 봉쇄하고 있다. 정문 바깥쪽에 약 20명이 배치돼 있고 안쪽 당사 로비에는 약 70~80명이 대기하며 '노무현을 심판하자', '호남을 지켜내자', '편파수사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화갑 전 대표는 출입구가 폐쇄된 민주당 대표실에서 20여명의 당원들과 담소를 나누면서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중략)
검찰 측은 오후 2시 30분쯤 3차 진입을 시도했으나 이미 당사 앞마당에 모여든 1000여명의 당원들에 의해 쫓겨나다시피 해 당사 주변으로 철수했다. 일부 흥분한 당원들은 검찰을 향해 "권력의 시녀, 깡패는 돌아가라"라고 고성을 지르며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중략)
결국 이날 오전 10시45분부터 12시간여 동안 진행됐던 한 의원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집행은 무산됐다.’
당시 강금실 장관이 전화를 걸어 "언제까지 이렇게 대치해야 되느냐? TV에 생중계되고 있으니" 하면서 걱정했다. "어쨌든 사전구속영장의 집행기간은 48시간이므로 그 시간이 다 될 때까지는 집행하기 위하여 대치를 해야 한다"고 대답해 드렸다.
아마도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장관으로서 상당히 괴로웠던 모양이다. 정치권에서 여러 가지 압력을 행사했으리라고 짐작되었다. 그러나 강 장관님은 더 이상 추궁을 하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뚝심을 가지고 정치 외풍을 막아주었다고 생각된다. 하여튼 너무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민주당 당사는 출입을 막고 있어 구속영장 집행을 맡고 있던 수사팀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내부에서는 무리한 집행을 하다가는 큰 불상사, 즉 건물에서 뛰어내려 크게 다치는 등 사고를 유발할 수 있으니 영장집행을 중단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나는 동조할 수 없었다. 법원의 구속영장 집행이 방해꾼들에 의해 저지된다면 어떻게 형사사법 정의가 유지될 수 있으며 법치주의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누구든 구속을 면하기 위하여 방해꾼들을 동원하는 사례가 성공한다면 이와 유사한 모방범죄(copycat)가 성행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사전구속영장의 집행시간인 48시간을 끝까지 지킬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경찰에 집행병력을 추가로 요청했다.
- 2004년 1월 30일 당사에서 당 소속 의원들과 함께 자신의 경선자금에 대한 검찰수사에 항의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화갑 민주당 전 대표(가운데).
당시 검찰 내부에서는 그를 처음부터 불구속으로 처리하자는 주장도 없지는 않았다. 그것이 이른바 ‘정치적 감각’을 인정받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한 의원은 내가 서울중앙지검장을 떠나 대전고검장으로 발령 나고 한 달 뒤에 내 후임자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었다.
내가 그대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었다면 구속영장을 재청구했을 것이다. 정치적인 고려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말로는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면서도 힘이 있는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은 불구속으로 처리하면서 서민들을 구속 위주로 처리하는 관행은 검찰의 신뢰성 측면에서도 고쳐져야 한다. 오히려 지도층 인사일수록 더욱 엄격한 법 집행이 요구됨은 물론이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2004년 8월25일 열린 이 사건 첫 재판에서 영장집행 방해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당시 내가)연금 상태였다. 죄송하다"며 "나가고 싶었지만 당원들이 말렸는데 결과적으로 검찰과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나는 검찰에 재직하는 동안 부하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곤 했다. 검사의 수사 업무는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라고. 어느 특정한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라 범죄 사실을 규명하려는 것이라고. 따라서 법 규정에 따라 철저히 수사하되 판단은 법원에 맡겨야 한다고. 그 과정에서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구속하는 차별적인 대우는 적어도 내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한화갑씨 사건의 경우는 26년에 걸친 나의 검사 생활을 통해 명백한 판단착오로 기억되고 있다. <계속>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출처 : 달구지와 카메라
글쓴이 : 달구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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