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잘나가, “삼성이 FTA를 불렀다?”
지난해 걸 그룹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는 공전의 히트였다. 도무지 잘 나갈 것 없는 젊은 세대들이 이 노래에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88만원 세대. 비정규직의 설움을 감수하며, 최저인금에도 못 미치는 값싼 알바로 젊음을 허비하며 희망이라고는 손톱만큼도 기대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이 노래는 무엇이었던 걸까? 현시욕, 아니면 그들의 내면에 잠재된 욕망이거나 그 우울한 현실에 대한 대리만족. 그러나 아무리 외쳐 봐도 잘나가는 건 이들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잘 나가는 것, 정말 “내가 제일 잘 나가”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른바 로얄 패밀리라고 불리는 삼성가 사람들이다.
“삼성이 ‘젊은 리더들’에게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9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71세 생일 기념 만찬에 대한 언론의 헌사다. 이 회장 일가가 총출동한 이날 행사는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본관에서 열렸다. 그룹 부사장 이상 임원을 부부 동반으로 초대한 행사였다. 언론은 모처럼 총출동한 로얄 패밀리 삼성가 사람들을 잡기에 분주했다. 특히 언론의 관심은 연예인 뺨치는 이부진 이서현 자매의 화려한 패션에 스포트라이트를 집중했다. 이건희 부부 또한 더없이 화려하고 우아해 보였다. 이것이 대한민국 ‘최고 패밀리’라고 말하는 것처럼. 언론은 이들에게 최고의 공을 들였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삼성 관계자는 이 날 행사를 “지난해 세계경제가 어려운데도 최대 실적을 낸 것을 격려하고 회사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해달라고 미래 사장 후보들인 부사장들에게 당부하기 위한 자리”라고 말했다. 내가 제일 잘나가, 역시 삼성이다.
다음날일 10일 경향신문 <우석훈의 ‘시민운동 몇 어찌’>에는 “지방정부와 삼성의 결탁”이라는 의미심장한 글이 실렸다. 우석훈은 이 글에서 “삼성이 FTA를 불러왔고, 현대가 토건을 불러왔다”며 “정권은 망해도 특혜 기업만 번영하는 기이한 지난 두 번의 경험(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은 이제 다음 정부에서는 그만하자”고 일갈했다.
이 글에서 우석훈은 “지난 정부의 국정을 토건으로 그리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동시다발적 FTA 국면으로 끌고 간 근본적인 힘은 삼성에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경제범죄로 구속되어 있던 이건희 회장을 끄집어낸 것은 전 이광재 강원도지사가 주도했던 평창 동계올림픽 3차유치 시도였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평창의 3차례에 걸친 유치 시도는 그 자체로도 황당하지만, 삼성이 이명박 정부 들어 새롭게 시도하는 사회와의 관계 맺기라는 것이다. 그는 하계올림픽과 달리 도시 차원에서 진행되는 동계올림픽 한국은 경제범죄자였던 이건희 회장을 사면하는 황당한 일을 했다고 비꼬았다.
우석훈은 참여정부에서 이광재를 축으로 ‘삼성공화국’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국정 기본뱡향 설정에 삼성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이때 시장은 바로 ‘삼성’이 틀림없고, 넘어간 것은 대통령의 오른팔인 이광재가 아니었을까? 라고 묻는다.
참여정부에서 잘 나가던 삼성이 이명박정부 어땠을까? 예측과 달리 ‘특별히 좋아진 건 별로 없다’고 한다. 그 이유를 ‘진짜 한몫 챙긴’ 외국 회사의 약진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은 그의 글을 직접 인용해 보면 이렇다.
“참여정부에서 기업도시 건 등을 삼성이 먹었다면, 현 정권에서 진짜로 처먹은 것은 딱 두 종류, 유통자본과 외국 회사들이었다. 특히 외국 컨설팅 회사들은 중요한 국정과제를 좌지우지하면서, 사실상 청와대를 장악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시청료 인상을 비롯한 KBS 구조조정 방안은 보스턴 컨설팅에서 했다. 지금 야권 등원의 중요한 명분의 하나였던 농협의 신경분리나 한전 구조조정 방안 등 이전 정권에서는 주요 국책연구소에서 했던 일들을 매킨지에서 했다. 이게 도대체 나라꼴이 아니다. 한술 더 떠서 외국계 컨설턴트들이 아예 청와대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기후변화협약 기본 방향이니 이런 걸 잡겠다고 하니, 정부가 정부 꼴이 아닌 게 당연하지 않은가? 삼성이 현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힘을 덜 쓴 건, 정권이 삼성을 견제해서가 아니라 외국계 회사가 약진하며 벌어진 기이한 사건일 뿐이다.”
우석훈은 이같은 상황에서 삼성은 어쩔 수 없이 “외국계 컨설팅 회사와 결탁이 덜 된 지방정부를 공략하는 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그 사례가 앞서 밝힌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등 강원도, 송도신도시의 인천, 새만금 방조제의 전북 등이다. 이런 사정으로 “중앙정부는 매킨지와 보스턴, 지방정부는 삼성”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결탁 속에서 인천공항 매각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석훈은 참여정부 시절 ‘우광재 좌희정’으로 불리며 최측근 실세역할을 했던 이광재와 안희정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이광재의 경우 “대표적인 삼성 장학생”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하여 삼성의 이건희를 사면하는 공을 세웠다면, 안희정은 충남도정을 책임지며 “한국 농업의 최대 적이었던 카길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는 이유다. 이를 보고 그는 “미국 안마당에서 다국적 자본에 유린당하는 중남미 어떤 국가”를 보는 듯 하다고 소감을 밝힌다. 한마디로 “나라꼴이 꼴이 아니다”라는 개탄이다.
우석훈은 이러니 국민들의 경제적 삶이 형편무인지경에 빠지게 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앞으로는 “주요 국책사업을 외국계 컨설팅사에 넘기지 말라는 특별법이라도 신설”해야 할 상황이라며, 경제민주화 금융민주화 따질 것 없이 “국정이나마 한국 사람이 하는 것이 개혁의 내용이 될 지경”이라고 개탄하고 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변화의 출발점은 삼성, 현대와의 관계”라며 앞으로 “시민의 정부에서도 삼성 장학생들이 한자리 차지해서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고 강조하며 ‘삼성공화국’이제는 그만하자고 호소하는 것이다.
우석훈의 이런 성찰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뒷받침하는 보도는 또 있다. 11일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한미FTA 협상의 주역들이 잇달아 ‘삼성맨’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김원경(45) 주미 한국대사관 경제참사관이 2월 정기인사를 앞두고 사의를 표명했는데, 삼성전자 미주법인 상무로 이직할 것이라 한다. 그는 외교부 출신 미국변호사 1호이자, 외시 24회 출신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기획단 총괄팀장을 맡아 협상을 이끌었고, 2009년부터는 주미 대사관에서 자동차 분야 재협상 등 통상현안을 맡아왔다. 이에 앞서 2009년 3월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주도한 김현종(53) 전 본부장 이미 삼성전자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해외법무팀을 맡고 있다. 소위 일국의 통상대표 차포가 나란히 삼성으로 옮겨 앉는 것이다.
경제주권을 그대로 미국에 넘겨줬다는 한미FTA 협상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에도 불구 서명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그 핵심들이 삼성으로 옮겨가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정도면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을까? “삼성이 FTA를 불렀다”는 말이 헛말은 아닐 것이다. 삼성이 “내가 제일 잘나가”라고 노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완성이라 불리는 한미FTA,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의 경제영토를 종횡무진 누비게 될 주역들은 누가 될 것인가. 그리고 이들이 이렇게 잘 나갈 때, 대한민국의 절대다수의 서민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치솟는 물가와 생활고로 ‘닥치고 노동’, 한 푼이라도 더 벌기위해서 가족들 얼굴도 잊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 때도 우리는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를 흥얼거리면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의 평창 동계올림픽을 고대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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