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숙종이야말로 <장희빈>의 주인공!" <장희빈, 사극의 배반> - 정두희외 3인

김영식구본능하늘 2015. 9. 30. 22:14

'장희빈'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미 많은/다양한/상세한 글들(실제 역사 속 장희빈,드라마 주인공등)이 이미 올라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는 <장희빈, 사극의 배반>이란 2004년 2월에 출간된 책을 읽고 그 책에서 의도하는 내용 중

정 교수님 파트만 몇가지 요약 했다.

 

나는 지금 '전작주의자'로서 정두희 교수님이 쓰신 모든 책들 독파에 매진하고 있다.

 

이 책은 비록 교수님의 단독 저서는 아니지만 네 분 모두 서강대 사학과에서 공부를 하셨고 2002년 11월부터 100부작으로 방영 시작된 김혜수(장희빈),전광열(숙종) 열연의 드라마 <장희빈>의 제작사인 (주)이스타즈 김성훈 사장이 장희빈을 주제로 삼아 '사극과 역사'와의 관련성을 검토할 기회를 마련해 보자는 제의에 교수님이 수락 하셨고 교수님의 제의로 지인(아마도 제자들 아닐까)인 김아네스,최선혜,이장우님도 함께 참여한 책으로서 지필 동기가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증주의 학자로서의 교수님의 역사 서술은 앞선 3권의 책(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왕조의 얼굴,조광조)에서 나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통찰력을 키우는데 도움을 많이 주셨다. 그리고 교수님의 글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았고 이해가 쏙쏙 되고 reasonable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재밌기까지 했다. 역사 읽기에 재미를 붙이게끔 해주신 고마운 분이시다. 그러므로 여태 내가 '장희빈'하면 떠오르는 표독스런 사약 받는 장면, 한 없이 착한 '인현왕후', 장희빈에 휘둘리는 유약한 이미지의 '숙종'에 대한 이미지를 사료를 바탕으로 어떻게 바꿔 주실 지 자못 기대를 갖고 읽기 시작했다. 

 

 

1. TV 사극이 유행하는 사회

    왜 TV 사극은 자주 만들어질까?

시원한 답을 구하기는 어렵지만 사극이 우리들의 역사

지식과 역사 인식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TV 시청자들은 방영중인 사극이 역사적 사실을 나름대로 전하고 있다고 믿고 TV 사극은 이를 시청하는 국민 모두에게 역사를 교육하고 국민의 역사

의식을 지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한국인의 의식 속에는 '하나의 역사, 하나의 해석'에

대한 고정 관념이 자리하고 있다. 아직도 '국사'를 국책

과목이라 해서 국가가 만든 교과서만 유일하게 통용되는 이 나라 역사 교육은 그런 고정관념을 지속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역사 서술에는 역사가의 주관이 개입할 수 밖에 없기에 오직 하나의 객관적 역사 해석이란 불가능

하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다양한 역사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는 역사적 상대주의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의 지적 풍토에서, TV 사극의 '역사 해석'도 절대적 권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사극에서 재현되는 '역사'를 많은 사람들이 실제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도 아니며, TV 사극 본래의 목적도

아니다.

 

2. TV 사극 작가와 역사가

    사극 작가는 드라마 <장희빈>을 위해 『숙종실록』을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로 방대한 분량의 실록을 그대로 옮기는 건 불가능하고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선별해 정리하고, 그 자료를 자신의 생각으로 엮어, 장희빈이라는 한 여인의 삶을 숙종대의 처절한 정치사와 관련해 재구성하려 했을 것이다. 역사가도 일정 부분 동일한 과정을 밞는다.

 

    사극 작가,역사가 모두 상상력의 도윰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인현왕후가 왕자를 낳지 못하는데 장희빈이 아들을 잉태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누구나 궁중에서 장희빈의 입장은 강화되는 반면, 인현왕후의 처지는 어렵게 될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인현황후가 장희빈을 질투했다고 상상할 수도 있고 혹은 그녀가 너무도 상심해서 자기 연민에 빠졌다고 상상할 수도 있다. 이것은 상상이다. 실록에 그처럼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상상력의 영역에서 작가와 역사가 사이에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작가는 역사가에 비해 거의 무제한에 가깝게 자유롭다. 장희빈의 미모,성격에 이르기까지 마음먹은 대로

그려낼 수 있다. 역사학자가 자를 지녔다면, 작가와 배우는 고무줄을 가진 셈이다.

사극 작가는 소재가 역사일 뿐 그가 추구하는 목적은 결국 문학인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는 실재하는 사실만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결코 있을 법한 허구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역사가는 사료의 제약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 서술은 문학처럼 강력한 호소력을 지닐 수도 없으며, 드라마틱할 수도 없다. 그러나 실재했던 상황을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설들력 있게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가의 존재 가치가 있다.

 

3. 역사는 자의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인가?

    역사 해석 과정에서 객관적 진실에 이를 수 없다면 역사란 임의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사극이나 역사 서술에 드러나 역사가 작가나 역사가의 주관적 해석에 따른 것이라면, 누구든지 자기 나름

대로 역사 해석을 내놓을 수 있으며, 또 그런 해석은 모두 그 어떤 정당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는가?

 

    성실한 역사가는 처음부터 자신의 시야가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해석이 객관적이라거나 절대적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보이는

역사를, 그것이 매우 작고 제한된 것이라 할지라도, 충실하게 서술함으로써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덜어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객관적 역사는 존재하지 않지만, 역사 해석의 상대성을 자신의 왜소한 처지와 관련해 깊이 성찰하면 할수록 역사 해석의 진실성은 오히려 더욱 증대될 것이다.

 

4. 자기 고백의 역사 서술

    역사 서술이나 사극을 통해 드러나는 역사적 진실이 이처럼 상대적이고 불완전한 것이라면 실제의 역사는 과연 어떠한 것일까? 지금의 우리는 모른다. 보이는 역사가 전부가 아니라면 더 노력하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무슨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역사라면 우리는 과거를 탐구하는 것이라 생각

하지만 만난 적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사람들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가 있는가?

 

    단편적인 기록들 사이를 자신의 사고력으로 다 채우고 나면 수백 년 전의 대상과 현재의 나 사이에 있던

모든 간격이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체험을 역사가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나와 과거사를 이처럼 가깝게 연결시켜 주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 최대 관심사는 과거의 그 무엇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점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사료를 통해 역사가 재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료가 내 연속된 삶의 과정에서 새로운 탄생을 겪는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내 역사 서술은 과거이면서 동시에 내 삶의 이야기인 것이다.

결국 내가 나에 대해 아는 것 이상으로 과거를 알 도리가 없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내 욕구가 절실하면 할수록, 내 욕구가 많은 사람과 진정으로 함께 나눌 만한 가치가 크면 클수록 그에 바탕을 둔 역사 서술은 더욱 큰 생명력을 지닐 것이 분명하다.

 

    나는 좋은 역사 서술은 어떤 형태로든 자기 고백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5. 책과 TV 화면의 서로 다른 세계

    독자들은 자신의 판단으로 주변 세계를 미세하게 관찰하면서 숲을 헤쳐 나가야만 한다. 말하자면 문자

기록으로 된 역사 서술은 영화의 세계보다 훨씬 깊은 곳으로 독자들을 안내할 수 있지만, 온갖 샛길과 고비

고비마다 만나는 신비로운 경험들은 독자 자신이 찾아야 한다.

 

    역사를 기록하는 수단으로서 영상 매체의 중요성이 아무리 커졌다고 하더라도 문자 기록을 중시해 온 역사학의 전통이 무너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독자는 읽고 생각하는 수고를 덜 수 있는 길이 없고 그 고달픈 길을 통해서만 더 참된 역사적 진실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6. 바람직한 TV 사극의 출현을 기다리며

    고증의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결코 미덕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허구의 세계에서 마음껏

펼쳐질 작가의 빼어난 상상력이 빚어낸 결정체가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재미있기만 하다면, 고증에 따른

고의적이거나 무의식적인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사극이 역사이기를 주장하는 그 순간 그것은 사극도 아니고 역사도 아닌 것이 된다고 나는 확신한다.

문하적 상상력을 상실한 작가만이 그런 유혹에 쉽게 빠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극 작가는 문학

만이 지닐 수 있는 허구적 세계를 창조하는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서, 역사가는 결코 그려낼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 사극과 역사 소설을 읽고 역사가가 되기를 꿈꾸는 젊은이가 줄을 잇게 될 정도로!

 

마지막으로, 왜 숙종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주인공라는 걸까?

장희빈이 천한 신분에서 중전이 된 조선시대 전무후무한 인물이기 때문에 주인공으로 다루어졌을뿐 이 책에서는 조선왕조 최장의 재임기간(46년)동안 남인,노론,소론 어디에도 끌려다니지 않고 왕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왕으로서 노론을 제지하기 위해 남인쪽 장희빈을 세웠고 남인을 물러나게 하고 다시 노론을 세우기

위해 인현왕후를 폐비에서 복귀 시켰고 숙종 사후 정국에 경종의 모로서 나쁜 영향을 미칠꺼라 판단한 숙종은 장희빈에게 사약까지 내리게 된다.

이러한 정치적 결정으로서 여성들과 자식들이 필요했기에 이 결정의 중심에 있는 숙종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기존 드라마의 고정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역사 재해석이긴 하지만 살을 섞는 사이인데 정치적인 사항만

고려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요즘 '장옥정 사랑에 살다'란 드라마가 한창 방영중이다.

왠지 어울릴꺼 같지 않은 김태희가 희빈 역할을 맡았다고 하고 또 장희빈이야란 생각에 관심 둘 생각조차

안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작가가 어떻게 표현했을까하는 궁금함이 생기게 되었다.

홈피에서 인물들에 대한 해석을 읽어보니, 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고증작업을 잘 한거 같고 정치적 의미

에서의 숙종을 잘 표현해 놓은거 같다. 정 교수님이 제안한 바람직한 TV 사극이란 관점에서 몰아서 좀

봐야겠다.

< 출처 : SBS >

 

저자 : 정두희 교수

사망 : 2013년 2월 20일

학력
   - 서강대학교 대학원 문학 박사
경력
   - 진단학회 총무
   - 역사학회 총무
   - 1990.03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 1981.06~1982.05 하버드옌칭연구소 방문학자

   - 조선전기 정치 지배세력을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을 시작으로 조선시대를 연구한 다양한 글을 발표했으며, 특히 조선의 건국사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인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일국사적 시각에서 벗어난 한국사 연구에 관심을 갖고 세계 각국의 관련 연구자들을 불러모아 국제학술대회를 두 차례 개최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초기 정치 지배세력 연구>(1983), <조선시대 인물의 재발견>(1997), <하나의 역사, 두 개의 역사학>(2001), <조광조>(2001), <한국사에 있어서 지방과 중앙>(2003), <지방과 중앙>(2003),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2007), <왕조의 얼굴>(2010)등이

있다.

출처 : 키다리 아저씨 - 티코햄
글쓴이 : 티코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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