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게 많았다. 현대가 후계 구도를 둘러싼 가족들의 갈등과 고 정주영 명예회장에 대한 기억,
그리고 최근 부쩍 바빠진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물었다. 에둘러 말하기 좋아하는 정몽준은 조심조심하면서도 비교적 솔직하게 속내를 보여줬다.
최근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이 5000억원 규모의 나눔 재단을 설립한다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그가 사재 2000억원을 내놓고, 현대가 오너와 기업들이 내놓은 자금을 더하기로 했다. 재단 측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 10주기(올 3월)를 맞아 선친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서 기획한 일”이라고 발표했다.
요즘 그의 발걸음이 부쩍 분주해졌다. 추석을 앞두고 자서전『나의 도전, 나의 열정』을 출간했고, 북 사인회 등 여러 행사로 독자들과 직접 만난다. 10월 중에도 명사들과의 대담을 엮어 책 한 권을 또 펴낸다. 정치 관련 이슈에 대해서 발언을 늘려가고 있으며 외부 활동도 많아졌다.
인터뷰 시간은 기자와 오후 3시에 만나기로 했지만 약속이 많이 잡혀 5시로 미뤄졌고, 그나마 한 시간 후에는 바로 국회에 가야 한다고 했다. 미리 만난 보좌관은 “최근 인터뷰 요청이 많아서 1:1 인터뷰를 하지 못하고 한 번에 여러 명의 기자들을 만나 취재에 응한다”고 했다. 부쩍 분주해진 그의 행보를 정치권에서는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발걸음으로 해석한다.
조용했던 지난 추석 현대가 풍경
친척 모임 대신 가족끼리 따로 성묘
인터뷰 자리에는 아내 김영명 여사가 함께하기로 했다. 부부는 추석 연휴에 경기도 하남 선산을 찾았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특이한 것은, 형제들과 함께 간 게 아니라 아이들만 데리고 따로 다녀왔다고 했다. 마침 지난 8월, 어머니 고 변중석 여사 제사에 장남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참석하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던 터였다.
이에 대해 정몽준 의원은 “원래 명절 성묘는 형제들이 따로 다녔다”고 말하면서, “예전부터 늘 그랬으니까 유별난 시각으로 보지는 말아 달라”고 했다. 형제들이 대부분 경영자여서 회사 일정으로 바쁘고, 정 의원 자신도 추석 때는 지역구(서울 동작을) 이곳저곳으로 인사를 다니느라 막상 시간을 내려면 쉽지 않다는 귀띔.
연휴 전에는 청운동 큰집(생전 정주영 회장 자택)에 모여 송편을 빚었는데, 그때도 한꺼번에 모이지 않고 각자 스케줄에 맞춰 따로 다녀간다고 했다. 조카며느리 노현정의 근황 등 현대가의 명절 풍경이 궁금했는데 다들 시간이 맞지 않아 한자리에 모이지 못했다는 설명. 이에 대해 정 의원은 “바쁘기도 하거니와 성격들이 원래 그런 편”이라고 말했다.“우리 집안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무뚝뚝한 편이에요. 다들 말수가 적어서, 제사 때 모여도 그냥 절하고 국수 먹고 헤어져요. 여자들은 동서끼리 수다도 많이 떨고 그러는데 남자들은 다들 데면데면한 편이에요. 환갑 넘긴 형제들이 뭐 일일이 자기 속내를 말로 설명하고 그러겠어요.”
정몽헌 회장이 눈을 감은 후, 정몽준 의원과 현정은 회장은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싸고 대립한 적이 있지만 최근에는 화해의 바람이 분다.
형제들의 근황에 주목하는 건, 현대가 후계 구도 및 경영권을 둘러싸고 지금껏 여러 번의 집안싸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몽준 의원도 “아버지가 일군 회사들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는데 가끔 식구들이 예전 같지 않다. 그럴 때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고 정주영 회장은 6남 2녀의 맏이로 어려서부터 형제들을 잘 챙겼고 기업가가 된 후에도 식구들의 화합을 무엇보다 강조했었다. 이때 아내 김영명 여사도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는데, 생각해 보면 시간이 참 빨리 간 것 같아요. 여전히 그분의 빈자리가 느껴지거든요. 집안에 큰 어른이 계시는 것 하고, 안 계시는 게 많이 다르더라고요. 예전에는 명절 때 식구들이 다들 모여서 그냥 빙 둘러앉기만 해도 그 큰 거실이 꽉 차거나 부족할 정도였는데 요즘은 따로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아쉬워요.”
현대가 권력 구도를 둘러싼 갈등에는 크게 두 가지 사건이 있다. 생전의 정주영 회장이 그룹 후계자를 큰아들 정몽구 현대차 회장 대신 5남 정몽헌 회장으로 지목하면서 형제간에 경영권 다툼이 일었다.
소위 말하는 ‘왕자의 난’이다. 형제의 갈등이 점점 불거지고 세상이 떠들썩해지자, 정주영 명예회장은 ‘3부자 동반 퇴진’ 카드를 꺼내 들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식구들이 서로 얼굴 붉히는 걸 두고 볼 수 없어서 내린 결단이었다.
“아버지 떠난 후 달라진 집안 풍경, 5000억 나눔 재단, 스캔들과 루머…”
부부가 함께 웃는 이 사진을 찍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사진기자의 거듭된“스마일~”외침에 정몽준 의원이“나는 원래 잘 못 웃는다”며 난감해하자 아내가 옆에서 “이 집 남자들이 원래 좀 무뚝뚝하다”고 귀띔했다.
올해 3월이 아버지 10주기였어요. 가족 행사가 많았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그분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나눔을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는 지난 2006년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세상을 떠난 일이다. 정몽헌 회장이 눈을 감은 후, 미망인 현정은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남편의 형제들과 한바탕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
그중에는 현대그룹 지분을 둘러싸고 정몽준 당시 현대중공업 회장과 벌였던 소위 ‘시동생의 난’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정 의원은 예전 인터뷰에서 “가족들 간의 화합을 가장 중시했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자식들이 참회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때 큰형(정몽구 회장)과 작은형(고 정몽헌 회장)이 빚은 갈등에 대해서는 “형님들 사이에서 서로를 이간질하던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더 커졌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면 요즘은 어떨까. 친척들과의 매듭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가족들끼리는 미주알고주알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 수 있는 부분들이 있지 않나”면서 관계가 제법 회복됐음을 에둘러 말했다.
최근 화제가 됐던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의 결혼에 대해서도 물었다. 정지이 전무는 고 정몽헌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사이의 장녀로 정 의원에게는 조카다. 그녀는 지난 9월 3일 결혼식을 올렸다.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큰아버지 정몽구 회장이 혼주 역할을 맡고 결혼을 계기로 범현대가의 화해가 물살을 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있었지만 정몽구 회장은 일정이 겹쳐 결혼식에 불참했다. 정몽준 의원은 이에 대해 “집안 식구끼리 화해는 또 무엇을 하겠느냐”면서 역시 에둘러 표현했다.
나눔재단이 대선 행보?
아버지의 정신을 잇는 일이다
최근 그의 행보가 이슈화되기 시작한 건, 5000억원 규모의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그가 재단 설립을 주도했고 현대해상과 현대백화점, KCC 등 범현대가에서 힘을 보탰다.
재단 측은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세우는 등 나눔 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재단을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정몽준 의원도 ‘아버지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분은 사람이 모든 일의 근본이고, 사람을 가장 많이 괴롭히는 게 병과 가난이라고 생각하셨어요. 재단을 세워서 시골에 병원 짓고 노인들 치료하는 데 힘쓰신 것도 그래서였어요. 다들 어렵게 사는 터라 가난과 병의 고리를 끊어야 되는 시절이었는데 그럴 때 기업가들이 나서야 한다는 믿음이 있으셨죠.”
그는 아버지가 각별히 아낀 아들이었다. 서른 살 되던 해 현대중공업을 맡겼고, 88올림픽 유치전 때 해외 출장에도 꼭 데리고 다녔다. 평소 호랑이 같은 성격으로 유명해 별명도 ‘왕회장’이었지만, 여섯째 아들 정몽준 만큼은 유난히 귀여워했다.
오래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그가 아버지에게 “술을 한잔 사겠다”고 제안해 서울 종로의 한 맥주집에서 단둘이 술잔을 기울였다. 살갑게 대하는 아들이 귀엽고 기특했던 아버지는, “2차를 살 테니 한잔 더 하자”고 했다.
당시 아들이 안내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술을 더 마셨는데, 술값이 꽤 많이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동안 술집에 달아뒀던 외상을 아버지 이름으로 한꺼번에 결제한 것. 왕회장은 아들을 짐짓 나무라면서도 측근들에게 “넉살 좋고 배짱이 두둑한 걸 보니 크게 될 녀석”이라며 흐뭇해했다는 일화다.
그렇게 격의 없고 각별했던 사이여서일까. 정 의원은 평소 아버지의 뒤를 잇는 일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이번 기부도 그런 취지에서 시작됐다.
“올해 3월이 아버지 10주기였어요. 추모식과 가족 음악회 등 여러 행사가 있었는데, 아버지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나눔을 생각했고, 그러면 어디다 나누는 게 좋은지 고민했는데, 요즘은 아버지 시대와 비교하면 세상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가난 극복이 화두가 아니라 교육이나 소득 불균형으로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지는 걸 고민할 시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재단 기금은 주로 그런 쪽에 쓰이면 좋겠습니다.”
“올해 3월이 아버지 10주기였어요. 추모식과 가족 음악회 등 여러 행사가 있었는데, 아버지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나눔을 생각했고, 그러면 어디다 나누는 게 좋은지 고민했는데, 요즘은 아버지 시대와 비교하면 세상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가난 극복이 화두가 아니라 교육이나 소득 불균형으로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지는 걸 고민할 시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재단 기금은 주로 그런 쪽에 쓰이면 좋겠습니다.”
이번 기부를 ‘대선 행보’와 연계해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실제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부자 이미지가 정 의원 대선 행보의 걸림돌인데, 이런 이미지를 없애려는 의미도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편 재계 일각에서는 “장남 정몽구 회장이 언짢아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산’이라는 이름을 선거에 활용한다는 느낌이 들 수 있어서다.
하지만 정 의원 측은 이에 대해 오해라고 밝혔으며, 재단 활동이나 기금의 쓰임새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는다고 전한 바 있다. 실제로 그는 이번 나눔의 취지가 순수하다는 걸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부자가 존경받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는 부자들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자본주의잖아요. 돈 많은 사람이 인기가 있어야 되는데, 우리는 반대로 손가락질 받는 경우가 많죠.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정상인데, 많이 벌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느낌이에요. 저는 이게 돈을 번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봐요. 잘 벌었으면 쓰는 것도 잘 해야죠. 정치를 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나 때문에 기쁘고 행복해지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걸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그런 사람이 적다면 더 많이 움직여야죠.”
정몽준의 자녀 교육 키워드 두 가지
1_사람을 보는 통찰력 3세 경영인이 될지 모를 아이들에게 그는 무슨 가치를 가르치고 있을까. 그는 ‘남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살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인간관계를 잘한 편은 아닌 것 같아요. 한 사람을 여러 번 만나도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 서로 깊게 알기는 어렵잖아요. 저는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의 속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걸 못 보고 그 사람에 반영된 자기 자신을 보는, 그런 자기 중심적이고 편협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지 말아야죠.”
2_지금은 3F시대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가 하나 더 있다. 정 의원은 요즘이 ‘3F 시대’라고 했다. 여성(Female), 감수성(Feeling), 그리고 상상력(Fiction)의 앞글자를 딴 신조어다. 틀에 매이지 않고, 따듯한 감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는 얘기다. 고 정주영 회장이 자녀들에게 늘 강조했던 가치와도 일치한다.
내 아이들이 스스로 능력을 검증받기를 원해요. 본인이 알아서 증명하는 거죠. 스스로 원하고 능력도 된다면 적당한 곳에서 일을 할 수 있지만, 3세라는 이유로 무혈입성 하면 안 됩니다
“요즘엔 아이가 대학교에 잘 들어가려면 본인의 체력, 아버지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이 필요하대요(웃음). 그런데 장인이 외교관(고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 출신이시라 아이들 엄마가 거의 외국에서만 지냈거든요. 엄마들의 정보력은 대개 친구들에게서 나온다는데 국내에 동창들이 없으니까 아무래도 좀 불리하죠. 그래서 제가 입시 관련 정보들을 스크랩해서 많이 읽어보는데 잘 모르겠어요(웃음). 애를 셋이나 키웠는데도 교육이야 늘 어려우니까.”
큰딸이 서른살 가까이 되면서 아이들의 결혼 문제에도 슬슬 신경이 쓰이는 시점이다. 재벌가는 유력 인사들과 혼맥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현대가는 비교적 연애결혼에 자유로운 분위기다.
정 의원 부부도 중매 대신 유학 시절에 만나 연애해서 결혼한 케이스다. 하지만 부모로서의 은근한 바람은 있을 터. 며느릿감과 사윗감 얘기를 물어봤더니 김영명 여사가 “아빠(그녀는 남편을 이렇게 부른다)가 아무래도 딸들의 연애에 대해서는 조금 더 완고하고 보수적인 면이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워낙 딸들한테 약해서 야단도 잘 치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냥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해 줄 계획이란다.
“우리가 보기에는 혼기가 차서 조금씩 고민이 되죠. 그런데 요즘은 서른 살도 이르다고 하는 추세잖아요. 다들 직장 다니고 제 앞가림하느라 바빠서 결혼은 좀 뒤로 미루는 분위기죠. 애들이 부모 바라는 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만나면 그걸로 족해요. 다만 요즘 헤어지는 부부가 워낙 많다고 하니까 평생 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좀 신중하게 만나고.”
“자본주의잖아요. 돈 많은 사람이 인기가 있어야 되는데, 우리는 반대로 손가락질 받는 경우가 많죠.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정상인데, 많이 벌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느낌이에요. 저는 이게 돈을 번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봐요. 잘 벌었으면 쓰는 것도 잘 해야죠. 정치를 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나 때문에 기쁘고 행복해지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걸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그런 사람이 적다면 더 많이 움직여야죠.”
아이들이‘재벌 3세’ 되는 건 싫어
스스로 자기 능력을 검증받기 원해
그는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재벌’이라는 단어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 애쓰고, 혹시 좋지 않은 이미지로 비춰질까 항상 조심하는데도 사람들은 늘 ‘재벌 2세’라는 편견을 가지고 자신을 본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자식들에게도 늘 그런 부분을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요즘 3세 경영인들이 화두잖아요. 경쟁이 치열한 사회고, 취업도 힘든 마당에 다른 사람 보기에는 마치 부모 잘 만나서 노력 없이 성공하는 것 같으니까 불편한 시선이 있을 수밖에요. 정당한 걱정이라고 봐요. 능력이 없는데 무책임하게 올라가면 안 되죠.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능력이 있는데도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스스로 그런 능력을 검증받기를 원해요. 본인이 알아서 증명을 하라는 거죠. ‘스스로 원하고 능력도 된다면 적당한 곳에서 일을 할 수 있지만, 3세라는 이유로 무혈입성하면 안 된다’ 아이들에게 늘 그런 얘기를 해줍니다.”
그는 2남 2녀를 뒀다. 장남 기선씨(30)는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가 휴직 후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MBA를 수료하고 현재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서 일한다. 장녀 남이씨(29)는 MIT 졸업 후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 중이다. 둘째 딸 선이씨(26)의 이력은 독특하다. 어릴 때 피겨 스케이팅을 배웠다.
정 의원은 “계속했으면 김연아 다음으로 2등은 했을 것”이라며 웃는다. 촉망받는 유망주였는데, 아이스링크에서 훈련 도중 같이 연습하던 친구가 사고를 당하는 걸 본 뒤로 운동을 그만뒀다. 그 후 피아노와 재즈를 배웠고, 미국에서 아트 매니지먼트를 전공한다. 지난 여름 방학 때 한국에 돌아와 예술의전당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늦둥이 막내 예선군(16)는 고등학교 1학년이다.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그런지, 늘 우등생이었던 형과 누나에 비해서는 비교적 공부가 좀 뒤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중학생 이후 조금씩 회복하면서 지금은 한창 공부에 재미가 들렸다. 아들 학교 얘기에 열을 올리는 걸 보니 두 사람도 영락없는 대한민국 부모다.
자서전에 담긴 비하인드 에피소드
여자 스타들과의 스캔들은 음모 같다… 정치권도 연예가처럼 이런저런 ‘소문’이 많은 곳이다. 정 의원은 여자 톱스타들과의 스캔들이 많았다. ‘자살한 여배우 J와 관련이 있다’ ‘유명 가수 C가 그의 아이를 임신해 출산을 위해 출국했다’ ‘그가 배우 S에게 호감을 느껴 타워팰리스를 사주고 현대중공업 주식 상장 정보를 알려줘서 돈을 벌게 해줬다‘는 내용들이다. 정 의원은 자서전에서 이 내용을 직접 해명했다.
“대선을 앞둔 시기에 처가 식구들과 밥을 먹는데 내가 아내를 허리띠로 때린다는 소문이 돈다고 했다. 선거 때는 다 그런 것이라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다음에 만나자 아직도 그런 소문이 돈다는 것이다.
나도 화가 나서 누구한테 들었느냐고 캐물었더니 뜻밖에도 내 주위 사람이었다. 연예인이 악플로 고통을 겪듯, 정치인들도 유언비어로 고통스럽다. 전파력이 빨라서 순식간에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당사자만 모른 채로 있다가 한참 뒤에야 그런 소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유언비어를 퍼뜨린 사람들이야 없던 일로 하면 그뿐이지만 피해자는 부정적 이미지로 세상에 낙인찍힌다. 이런 점 때문에 조직적으로 유언비어를 만들어내는 세력들이 있는 것 같다.”
현대가 형제들의 어린 시절… “몽구 형은 나보다 열세 살이나 많다. 터울이 많이 져서 대하기가 늘 어려웠다. 막내 삼촌보다 겨우 두 살 아래였다. 나이 차가 많다 보니 몽구 형하고는 서로 노는 물이 달라 소소한 추억거리가 별로 없다.
몽구 형은 어려서부터 체격이 우람하고 힘이 장사였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싸움 나면 사람을 들어서 던졌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설마 던지기야 했을까마는, 소문이 그럴듯하게 들릴 정도로 힘이 좋았다.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를 닮아 하나같이 힘이 장사다.
나는 몽헌 형과 방을 같이 썼다. 그래서인지 형에 대한 기억이 많다. 몽헌 형은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별명이 ‘샌님’이었다. 안경을 쓰고 늘 책을 봤다. 그렇다고 약골은 아니었다.
의외로 체격이 단단해서 철봉 같은 운동을 잘했다. 형이 대학생 때, 상처 난 몸을 거울에 비춰 보며 뿌듯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바다에 놀러 갔다가 시비를 거는 깡패들과 싸움이 났는데 그때 깡패들이 휘두른 자전거 체인에 맞은 자국이라고 했다.
이처럼 평소에는 내성적이고 조용하지만 화가 나면 공격적으로 변하곤 했다. 그때 얌전한 사람일수록 한번 화를 내면 크게 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아내 김영명씨에게 남편의 대선 행보에 대해 물었더니…
이날, 아내 김영명 여사가 먼저 약속 장소에 왔고 다른 스케줄이 있던 정몽준 의원은 잠시 후 따로 도착했다. 양복을 입고 재킷 단추를 채운 차림이었다. 그러자 아내가 “답답해 보이게 왜 양복을 입고 왔어요” 하더니 “사진도 찍을 텐데, 청바지 입으세요” 하고 권했다. 촬영을 위해 미리 바지를 한 벌 챙겨 왔단다. 아내는 “그래야 남편이 ‘영’해 보인다’고 했다”
평소 의견 충돌이 거의 없는 부부다. 하지만 지난 2002년, 남편이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 때는 분위기가 달랐다. 아내와 가족들은 완강하게 반대했다. 김영명 여사는 ‘바깥일도 좋지만 가족도 좀 돌보라’면서 때로는 화를 내기도 했다.
가족들을 힘들게 하면서 왜 굳이 어려운 선거에 뛰어드느냐고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굳이 말리지 않을 생각이다.
“그 길로 꼭 가고 싶다는데 어찌하겠어요. 경영하던 회사도 궤도에 올랐고, 아이들도 이제 다 컸으니까, 자꾸 가장이나 아빠 역할만 강조할 수는 없잖아요. 한 인간으로서 남자 정몽준의 길도 말릴 수는 없으니까요.”
실제로 정몽준 의원은 내심 내년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10월 26일에 치르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라고 권유했지만 완곡하게 거절하고 대선 주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선 행보에 대한 질문을 던졌더니 “분노로 가득 찬 사람들이 인기를 얻는 걸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런 분들이 스스로 원하는 사회상을 잘 만들어 갈 수 있는지 검증해 보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최근 부쩍 바빠진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물었다. 에둘러 말하기 좋아하는 정몽준은 조심조심하면서도 비교적 솔직하게 속내를 보여줬다.
최근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이 5000억원 규모의 나눔 재단을 설립한다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그가 사재 2000억원을 내놓고, 현대가 오너와 기업들이 내놓은 자금을 더하기로 했다. 재단 측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 10주기(올 3월)를 맞아 선친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서 기획한 일”이라고 발표했다.
요즘 그의 발걸음이 부쩍 분주해졌다. 추석을 앞두고 자서전『나의 도전, 나의 열정』을 출간했고, 북 사인회 등 여러 행사로 독자들과 직접 만난다. 10월 중에도 명사들과의 대담을 엮어 책 한 권을 또 펴낸다. 정치 관련 이슈에 대해서 발언을 늘려가고 있으며 외부 활동도 많아졌다.
인터뷰 시간은 기자와 오후 3시에 만나기로 했지만 약속이 많이 잡혀 5시로 미뤄졌고, 그나마 한 시간 후에는 바로 국회에 가야 한다고 했다. 미리 만난 보좌관은 “최근 인터뷰 요청이 많아서 1:1 인터뷰를 하지 못하고 한 번에 여러 명의 기자들을 만나 취재에 응한다”고 했다. 부쩍 분주해진 그의 행보를 정치권에서는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발걸음으로 해석한다.
고 정주영 회장은 매일 새벽 아들들과 걸어서 출근했다. 사진 왼쪽부터 정몽구, 정몽준, 정주영 회장, 정몽헌
조용했던 지난 추석 현대가 풍경
친척 모임 대신 가족끼리 따로 성묘
인터뷰 자리에는 아내 김영명 여사가 함께하기로 했다. 부부는 추석 연휴에 경기도 하남 선산을 찾았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특이한 것은, 형제들과 함께 간 게 아니라 아이들만 데리고 따로 다녀왔다고 했다. 마침 지난 8월, 어머니 고 변중석 여사 제사에 장남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참석하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던 터였다.
이에 대해 정몽준 의원은 “원래 명절 성묘는 형제들이 따로 다녔다”고 말하면서, “예전부터 늘 그랬으니까 유별난 시각으로 보지는 말아 달라”고 했다. 형제들이 대부분 경영자여서 회사 일정으로 바쁘고, 정 의원 자신도 추석 때는 지역구(서울 동작을) 이곳저곳으로 인사를 다니느라 막상 시간을 내려면 쉽지 않다는 귀띔.
2002년 평창동 집에서 찍은 사진. 아내가 헤어스타일을 손 봐 주는데 무뚝뚝한 그의 표정이 재밌다. 오른쪽은 장남 기선씨, 아래는 막내 예선군
정몽헌 회장이 눈을 감은 후, 정몽준 의원과 현정은 회장은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싸고 대립한 적이 있지만 최근에는 화해의 바람이 분다.
형제들의 근황에 주목하는 건, 현대가 후계 구도 및 경영권을 둘러싸고 지금껏 여러 번의 집안싸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몽준 의원도 “아버지가 일군 회사들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는데 가끔 식구들이 예전 같지 않다. 그럴 때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고 정주영 회장은 6남 2녀의 맏이로 어려서부터 형제들을 잘 챙겼고 기업가가 된 후에도 식구들의 화합을 무엇보다 강조했었다. 이때 아내 김영명 여사도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는데, 생각해 보면 시간이 참 빨리 간 것 같아요. 여전히 그분의 빈자리가 느껴지거든요. 집안에 큰 어른이 계시는 것 하고, 안 계시는 게 많이 다르더라고요. 예전에는 명절 때 식구들이 다들 모여서 그냥 빙 둘러앉기만 해도 그 큰 거실이 꽉 차거나 부족할 정도였는데 요즘은 따로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아쉬워요.”
현대가 권력 구도를 둘러싼 갈등에는 크게 두 가지 사건이 있다. 생전의 정주영 회장이 그룹 후계자를 큰아들 정몽구 현대차 회장 대신 5남 정몽헌 회장으로 지목하면서 형제간에 경영권 다툼이 일었다.
소위 말하는 ‘왕자의 난’이다. 형제의 갈등이 점점 불거지고 세상이 떠들썩해지자, 정주영 명예회장은 ‘3부자 동반 퇴진’ 카드를 꺼내 들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식구들이 서로 얼굴 붉히는 걸 두고 볼 수 없어서 내린 결단이었다.
“아버지 떠난 후 달라진 집안 풍경, 5000억 나눔 재단, 스캔들과 루머…”
부부가 함께 웃는 이 사진을 찍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사진기자의 거듭된“스마일~”외침에 정몽준 의원이“나는 원래 잘 못 웃는다”며 난감해하자 아내가 옆에서 “이 집 남자들이 원래 좀 무뚝뚝하다”고 귀띔했다.
올해 3월이 아버지 10주기였어요. 가족 행사가 많았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그분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나눔을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는 지난 2006년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세상을 떠난 일이다. 정몽헌 회장이 눈을 감은 후, 미망인 현정은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남편의 형제들과 한바탕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
그중에는 현대그룹 지분을 둘러싸고 정몽준 당시 현대중공업 회장과 벌였던 소위 ‘시동생의 난’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정 의원은 예전 인터뷰에서 “가족들 간의 화합을 가장 중시했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자식들이 참회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때 큰형(정몽구 회장)과 작은형(고 정몽헌 회장)이 빚은 갈등에 대해서는 “형님들 사이에서 서로를 이간질하던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더 커졌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면 요즘은 어떨까. 친척들과의 매듭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가족들끼리는 미주알고주알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 수 있는 부분들이 있지 않나”면서 관계가 제법 회복됐음을 에둘러 말했다.
최근 화제가 됐던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의 결혼에 대해서도 물었다. 정지이 전무는 고 정몽헌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사이의 장녀로 정 의원에게는 조카다. 그녀는 지난 9월 3일 결혼식을 올렸다.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큰아버지 정몽구 회장이 혼주 역할을 맡고 결혼을 계기로 범현대가의 화해가 물살을 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있었지만 정몽구 회장은 일정이 겹쳐 결혼식에 불참했다. 정몽준 의원은 이에 대해 “집안 식구끼리 화해는 또 무엇을 하겠느냐”면서 역시 에둘러 표현했다.
나눔재단이 대선 행보?
아버지의 정신을 잇는 일이다
최근 그의 행보가 이슈화되기 시작한 건, 5000억원 규모의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그가 재단 설립을 주도했고 현대해상과 현대백화점, KCC 등 범현대가에서 힘을 보탰다.
재단 측은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세우는 등 나눔 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재단을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정몽준 의원도 ‘아버지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분은 사람이 모든 일의 근본이고, 사람을 가장 많이 괴롭히는 게 병과 가난이라고 생각하셨어요. 재단을 세워서 시골에 병원 짓고 노인들 치료하는 데 힘쓰신 것도 그래서였어요. 다들 어렵게 사는 터라 가난과 병의 고리를 끊어야 되는 시절이었는데 그럴 때 기업가들이 나서야 한다는 믿음이 있으셨죠.”
그는 아버지가 각별히 아낀 아들이었다. 서른 살 되던 해 현대중공업을 맡겼고, 88올림픽 유치전 때 해외 출장에도 꼭 데리고 다녔다. 평소 호랑이 같은 성격으로 유명해 별명도 ‘왕회장’이었지만, 여섯째 아들 정몽준 만큼은 유난히 귀여워했다.
오래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그가 아버지에게 “술을 한잔 사겠다”고 제안해 서울 종로의 한 맥주집에서 단둘이 술잔을 기울였다. 살갑게 대하는 아들이 귀엽고 기특했던 아버지는, “2차를 살 테니 한잔 더 하자”고 했다.
당시 아들이 안내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술을 더 마셨는데, 술값이 꽤 많이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동안 술집에 달아뒀던 외상을 아버지 이름으로 한꺼번에 결제한 것. 왕회장은 아들을 짐짓 나무라면서도 측근들에게 “넉살 좋고 배짱이 두둑한 걸 보니 크게 될 녀석”이라며 흐뭇해했다는 일화다.
그렇게 격의 없고 각별했던 사이여서일까. 정 의원은 평소 아버지의 뒤를 잇는 일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이번 기부도 그런 취지에서 시작됐다.
“올해 3월이 아버지 10주기였어요. 추모식과 가족 음악회 등 여러 행사가 있었는데, 아버지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나눔을 생각했고, 그러면 어디다 나누는 게 좋은지 고민했는데, 요즘은 아버지 시대와 비교하면 세상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가난 극복이 화두가 아니라 교육이나 소득 불균형으로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지는 걸 고민할 시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재단 기금은 주로 그런 쪽에 쓰이면 좋겠습니다.”
“올해 3월이 아버지 10주기였어요. 추모식과 가족 음악회 등 여러 행사가 있었는데, 아버지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나눔을 생각했고, 그러면 어디다 나누는 게 좋은지 고민했는데, 요즘은 아버지 시대와 비교하면 세상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가난 극복이 화두가 아니라 교육이나 소득 불균형으로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지는 걸 고민할 시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재단 기금은 주로 그런 쪽에 쓰이면 좋겠습니다.”
이번 기부를 ‘대선 행보’와 연계해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실제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부자 이미지가 정 의원 대선 행보의 걸림돌인데, 이런 이미지를 없애려는 의미도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편 재계 일각에서는 “장남 정몽구 회장이 언짢아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산’이라는 이름을 선거에 활용한다는 느낌이 들 수 있어서다.
하지만 정 의원 측은 이에 대해 오해라고 밝혔으며, 재단 활동이나 기금의 쓰임새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는다고 전한 바 있다. 실제로 그는 이번 나눔의 취지가 순수하다는 걸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부자가 존경받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는 부자들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자본주의잖아요. 돈 많은 사람이 인기가 있어야 되는데, 우리는 반대로 손가락질 받는 경우가 많죠.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정상인데, 많이 벌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느낌이에요. 저는 이게 돈을 번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봐요. 잘 벌었으면 쓰는 것도 잘 해야죠. 정치를 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나 때문에 기쁘고 행복해지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걸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그런 사람이 적다면 더 많이 움직여야죠.”
정몽준의 자녀 교육 키워드 두 가지
1_사람을 보는 통찰력 3세 경영인이 될지 모를 아이들에게 그는 무슨 가치를 가르치고 있을까. 그는 ‘남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살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인간관계를 잘한 편은 아닌 것 같아요. 한 사람을 여러 번 만나도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 서로 깊게 알기는 어렵잖아요. 저는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의 속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걸 못 보고 그 사람에 반영된 자기 자신을 보는, 그런 자기 중심적이고 편협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지 말아야죠.”
2_지금은 3F시대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가 하나 더 있다. 정 의원은 요즘이 ‘3F 시대’라고 했다. 여성(Female), 감수성(Feeling), 그리고 상상력(Fiction)의 앞글자를 딴 신조어다. 틀에 매이지 않고, 따듯한 감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는 얘기다. 고 정주영 회장이 자녀들에게 늘 강조했던 가치와도 일치한다.
내 아이들이 스스로 능력을 검증받기를 원해요. 본인이 알아서 증명하는 거죠. 스스로 원하고 능력도 된다면 적당한 곳에서 일을 할 수 있지만, 3세라는 이유로 무혈입성 하면 안 됩니다
“요즘엔 아이가 대학교에 잘 들어가려면 본인의 체력, 아버지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이 필요하대요(웃음). 그런데 장인이 외교관(고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 출신이시라 아이들 엄마가 거의 외국에서만 지냈거든요. 엄마들의 정보력은 대개 친구들에게서 나온다는데 국내에 동창들이 없으니까 아무래도 좀 불리하죠. 그래서 제가 입시 관련 정보들을 스크랩해서 많이 읽어보는데 잘 모르겠어요(웃음). 애를 셋이나 키웠는데도 교육이야 늘 어려우니까.”
큰딸이 서른살 가까이 되면서 아이들의 결혼 문제에도 슬슬 신경이 쓰이는 시점이다. 재벌가는 유력 인사들과 혼맥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현대가는 비교적 연애결혼에 자유로운 분위기다.
정 의원 부부도 중매 대신 유학 시절에 만나 연애해서 결혼한 케이스다. 하지만 부모로서의 은근한 바람은 있을 터. 며느릿감과 사윗감 얘기를 물어봤더니 김영명 여사가 “아빠(그녀는 남편을 이렇게 부른다)가 아무래도 딸들의 연애에 대해서는 조금 더 완고하고 보수적인 면이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워낙 딸들한테 약해서 야단도 잘 치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냥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해 줄 계획이란다.
“우리가 보기에는 혼기가 차서 조금씩 고민이 되죠. 그런데 요즘은 서른 살도 이르다고 하는 추세잖아요. 다들 직장 다니고 제 앞가림하느라 바빠서 결혼은 좀 뒤로 미루는 분위기죠. 애들이 부모 바라는 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만나면 그걸로 족해요. 다만 요즘 헤어지는 부부가 워낙 많다고 하니까 평생 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좀 신중하게 만나고.”
“자본주의잖아요. 돈 많은 사람이 인기가 있어야 되는데, 우리는 반대로 손가락질 받는 경우가 많죠.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정상인데, 많이 벌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느낌이에요. 저는 이게 돈을 번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봐요. 잘 벌었으면 쓰는 것도 잘 해야죠. 정치를 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나 때문에 기쁘고 행복해지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걸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그런 사람이 적다면 더 많이 움직여야죠.”
스스로 자기 능력을 검증받기 원해
그는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재벌’이라는 단어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 애쓰고, 혹시 좋지 않은 이미지로 비춰질까 항상 조심하는데도 사람들은 늘 ‘재벌 2세’라는 편견을 가지고 자신을 본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자식들에게도 늘 그런 부분을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요즘 3세 경영인들이 화두잖아요. 경쟁이 치열한 사회고, 취업도 힘든 마당에 다른 사람 보기에는 마치 부모 잘 만나서 노력 없이 성공하는 것 같으니까 불편한 시선이 있을 수밖에요. 정당한 걱정이라고 봐요. 능력이 없는데 무책임하게 올라가면 안 되죠.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능력이 있는데도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스스로 그런 능력을 검증받기를 원해요. 본인이 알아서 증명을 하라는 거죠. ‘스스로 원하고 능력도 된다면 적당한 곳에서 일을 할 수 있지만, 3세라는 이유로 무혈입성하면 안 된다’ 아이들에게 늘 그런 얘기를 해줍니다.”
그는 2남 2녀를 뒀다. 장남 기선씨(30)는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가 휴직 후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MBA를 수료하고 현재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서 일한다. 장녀 남이씨(29)는 MIT 졸업 후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 중이다. 둘째 딸 선이씨(26)의 이력은 독특하다. 어릴 때 피겨 스케이팅을 배웠다.
정 의원은 “계속했으면 김연아 다음으로 2등은 했을 것”이라며 웃는다. 촉망받는 유망주였는데, 아이스링크에서 훈련 도중 같이 연습하던 친구가 사고를 당하는 걸 본 뒤로 운동을 그만뒀다. 그 후 피아노와 재즈를 배웠고, 미국에서 아트 매니지먼트를 전공한다. 지난 여름 방학 때 한국에 돌아와 예술의전당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늦둥이 막내 예선군(16)는 고등학교 1학년이다.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그런지, 늘 우등생이었던 형과 누나에 비해서는 비교적 공부가 좀 뒤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중학생 이후 조금씩 회복하면서 지금은 한창 공부에 재미가 들렸다. 아들 학교 얘기에 열을 올리는 걸 보니 두 사람도 영락없는 대한민국 부모다.
자서전에 담긴 비하인드 에피소드
여자 스타들과의 스캔들은 음모 같다… 정치권도 연예가처럼 이런저런 ‘소문’이 많은 곳이다. 정 의원은 여자 톱스타들과의 스캔들이 많았다. ‘자살한 여배우 J와 관련이 있다’ ‘유명 가수 C가 그의 아이를 임신해 출산을 위해 출국했다’ ‘그가 배우 S에게 호감을 느껴 타워팰리스를 사주고 현대중공업 주식 상장 정보를 알려줘서 돈을 벌게 해줬다‘는 내용들이다. 정 의원은 자서전에서 이 내용을 직접 해명했다.
“대선을 앞둔 시기에 처가 식구들과 밥을 먹는데 내가 아내를 허리띠로 때린다는 소문이 돈다고 했다. 선거 때는 다 그런 것이라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다음에 만나자 아직도 그런 소문이 돈다는 것이다.
나도 화가 나서 누구한테 들었느냐고 캐물었더니 뜻밖에도 내 주위 사람이었다. 연예인이 악플로 고통을 겪듯, 정치인들도 유언비어로 고통스럽다. 전파력이 빨라서 순식간에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당사자만 모른 채로 있다가 한참 뒤에야 그런 소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유언비어를 퍼뜨린 사람들이야 없던 일로 하면 그뿐이지만 피해자는 부정적 이미지로 세상에 낙인찍힌다. 이런 점 때문에 조직적으로 유언비어를 만들어내는 세력들이 있는 것 같다.”
현대가 형제들의 어린 시절… “몽구 형은 나보다 열세 살이나 많다. 터울이 많이 져서 대하기가 늘 어려웠다. 막내 삼촌보다 겨우 두 살 아래였다. 나이 차가 많다 보니 몽구 형하고는 서로 노는 물이 달라 소소한 추억거리가 별로 없다.
몽구 형은 어려서부터 체격이 우람하고 힘이 장사였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싸움 나면 사람을 들어서 던졌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설마 던지기야 했을까마는, 소문이 그럴듯하게 들릴 정도로 힘이 좋았다.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를 닮아 하나같이 힘이 장사다.
나는 몽헌 형과 방을 같이 썼다. 그래서인지 형에 대한 기억이 많다. 몽헌 형은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별명이 ‘샌님’이었다. 안경을 쓰고 늘 책을 봤다. 그렇다고 약골은 아니었다.
의외로 체격이 단단해서 철봉 같은 운동을 잘했다. 형이 대학생 때, 상처 난 몸을 거울에 비춰 보며 뿌듯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바다에 놀러 갔다가 시비를 거는 깡패들과 싸움이 났는데 그때 깡패들이 휘두른 자전거 체인에 맞은 자국이라고 했다.
이처럼 평소에는 내성적이고 조용하지만 화가 나면 공격적으로 변하곤 했다. 그때 얌전한 사람일수록 한번 화를 내면 크게 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아내 김영명씨에게 남편의 대선 행보에 대해 물었더니…
이날, 아내 김영명 여사가 먼저 약속 장소에 왔고 다른 스케줄이 있던 정몽준 의원은 잠시 후 따로 도착했다. 양복을 입고 재킷 단추를 채운 차림이었다. 그러자 아내가 “답답해 보이게 왜 양복을 입고 왔어요” 하더니 “사진도 찍을 텐데, 청바지 입으세요” 하고 권했다. 촬영을 위해 미리 바지를 한 벌 챙겨 왔단다. 아내는 “그래야 남편이 ‘영’해 보인다’고 했다”
가족들을 힘들게 하면서 왜 굳이 어려운 선거에 뛰어드느냐고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굳이 말리지 않을 생각이다.
“그 길로 꼭 가고 싶다는데 어찌하겠어요. 경영하던 회사도 궤도에 올랐고, 아이들도 이제 다 컸으니까, 자꾸 가장이나 아빠 역할만 강조할 수는 없잖아요. 한 인간으로서 남자 정몽준의 길도 말릴 수는 없으니까요.”
실제로 정몽준 의원은 내심 내년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10월 26일에 치르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라고 권유했지만 완곡하게 거절하고 대선 주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선 행보에 대한 질문을 던졌더니 “분노로 가득 찬 사람들이 인기를 얻는 걸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런 분들이 스스로 원하는 사회상을 잘 만들어 갈 수 있는지 검증해 보면 좋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