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조선시대 양반 비율 1.9%, 성씨를 가진 사람은 30%. + 우리집 족보있는데...선산 있는데....집성촌사는데....txt
조선시대 양반계급 인구 통계 조선시대 양반계급 인구의 통계는 1910년의 전국 호구조사에서 확인이 되는데, 총 가구
(家口) 수 289만 4,777호 가운데 양반이 5만 4,217호로 전체 인구의 겨우 1.9%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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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에 성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조선 전 인구의 15%에 불과 했었고, 조선 전기인 성종 때를 기준으로 보
면, 당시 인구의 10%가 넘는 35만 명이 공노비였고, 양반들의 사노비까지 합치면 적게는 전인구의 3분의 1이, 많게는 전
인구의 절반이 노비였다. 조선 중기 이후 유교가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진 후에 비로소 성씨가 자리잡게 되고 갑오
경장(1894년) 이전까지는 성을 가진 사람은 조선 전 인구의 30%에 불과 했던 것이다.(갑오경장은 1894년 양력 7
월 27일(음력 6월 25일)부터 1895년 8월까지 조선 정부 김홍집 내각을 중심으로 전개한 제도 개혁 운동을 말한다. 갑오개
혁이라고도 불렸다.)
요약: 조선시대 인구 중 양반은 1.9%
조선 초기에 이름에 성을 갖고 있던 사람은 인구 中 15%
조선 후기엔 30% 뿐.
그럼 일반 백성들이 성을 득템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경위는?
1800년대 초 공노비 해방이 이루어지고 갑오개혁 전후로 완전히 신분제가 철폐가됨
그러자 많은 천민 및 노비들이 평민이 되고 성씨를 갖기를 갈구함.
그리고 이 당시 성이 없는 평민들도 부지기수였음.
주로 노비들은 양반들이 많이 부리고 거느리고 살았음. 지금과 달리 옛날엔 양반이 희귀했고
권세 높은 집안의 양반일수록 어마어마한 수의 노비들을 부리고 살았고
살고 있는 지역의 유지로 군림하며 지역 경제를 책임지기도 했음.
이를테면........ 경상남도에 가상의 지역 "뉴욕군" 이라는 곳이 있다칩시다.
그곳에서 먹어주는 양반 뉴욕홍씨가 있음.
그는 권세가 높은 양반이자 뉴욕군의 경제를 틀어지고 있는 만석꾼 집안이기도 함.
그리고 뉴욕군의 양민들은 물론 노비들 천민 모두가 뉴욕홍씨 집안의
소작일을 하고 뉴욕홍씨 집을 위해서 일하고 그 집 덕분에 먹고 삼.
세월이 흘러 신분제가 폐지가 되고 성씨를 가질 수 있는 찬스가 왔을 때!
이들은 모두... 우린 뉴욕홍씨에 관련됐으니까 뉴욕홍씨를 쓰자
그래그래
그래서 성이 없덤 갑돌이는 홍갑돌이되고 마당쇠는 홍마당쇠가 되고
갑분이는 홍갑분이 되고...이런식이 됨!
그리고 그곳은 세월이 흘러...뉴욕군은 뉴욕홍씨 집성촌이 됨.
뉴욕홍씨들이 어마어마하게 모여 살고 있으니까~
대다수의 평민 및 천민 노비들은 양반가 성씨는 이런식으로 얻게 됨.
천민 노비: 노비해방 = 성씨 뭘로 하지? = 걍 주인마님 성씨 따라 쓰자 = 올 그래 그게 좋겠다.
일반 평민: 우리동네 짱은 로마박씨 가문 아님? 그럼 오늘부터 우리도 로마박씨가 되자 = 그래 그러자
이런 루트 ㅇㅇ
일례로 공노비 = 나라에 소속된 노비 = 우린 나라 소속이였으니까 전주이씨를 성으로 쓰자 = ㅇㅋ
전주이씨가 파워~~~ 많아지게된 계기.
그리고 일제강점기로 넘어오면서 전국적으로 호구 조사가 실시 되었는데
이 때 - 위와 같은 루트로 성씨를 적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성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
이때 성씨가 늘어난 이유.
-호구조사에 이름 쓰는 칸이 있음
-개똥이라 적음
-푸하하 조선놈들은 미개해서 성도 없데요 에베베
-ㅆㅂ 저 일본놈새끼가? 안되겠다 고쳐써야지
-전주이씨가 킹왕짱이니까... 이개똥이라 적어야지
-(수정) 이개똥
-오늘부터 우리집은 이씨집안임 ㅇㅇ
-나도 우리 지역은 김해김씨가 먹어주니까... 김갓난이라 적어야지..
-그럼 난 우리 예전 마님 이름 따서...정씨니까 정대만이라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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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됨.
물론 조선후기에 상업의 번창으로 돈을 많이 벌게 된 중인계급들이
몰락 양반가들의 족보를 사들이거나 돈을 주고 양반가 족보에 이름을 올리거나
하는 방법도 성행했으나 그 방법 많으론 이렇게 갑자기 성씨가 확확 늘어나진 않았음
중인계급이 많아봤자.....뭐....
아무튼 이런 연유로 조선후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우리나라에 성씨가
완존하게 정착이 되었다는 말씀
+
출처 - 두산 백과 (조선 왕실 종합 족보)
우리집 족보는 딱 봐도 오래되고 낡았는데 박물관 유물 같은데? 진짜 족보임...
족보 - 사면 그만, 만들면 그만
-유서있지만 몰록한 양반가문 족보를 산 경우
ex) 다른 집 족보를 산 시기 - 1912년 , 지금으로 치면 100년 넘은 족보..
당연히 오래되고 낡은게 정상 ㅇㅇ
- 족보를 만든 경우
ex)만든 시기 고조 할아버지 대인 1935년...
80여 년된 족보.... 당연히 낡고....오래되 보임.
낡고 오래된 건 진짜 족보라는 증거가 안됨
출처 - 한국 관광공사 (효령대군 묘)
그치만 우리집은 선산 있는뒈???????????
- 과거/ 장사를 돈을 많이 번 중인이 몰락 양반한테 선산을 산다.
거기에 부모님 묘를 모시고 앞으로 자기도 거기에 묻히고 대대손손
묘지로 쓴다. 이제 거기는 우리 선산 ㅇㅇ
- 현재/ 역시 투자는 부동산이쥐~ 돈을 벌어 산을 하나 산다.
조상님들 묘를 다 이장해 온다.
아범아 앞으로 여기가 우리 선산이다
예 아부지.
산을 산 시기 1988년
그리고 손자 曰 야 우리집 선산도 있어 레알 양반임 ㅋ
돈 있으면 누구나 선산 만들 수 있어요 ㅇㅇ
선산은 그냥 조상의 묘를 모시고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막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고 오래전부터 대를 물려 이어온..
뭐시기 그런게 아님.
그냥 작년에 산을 하나 샀어...
그리고 거기에 조상님들 묘를 이전했어
그럼 그것이 선산이여
별게 선산이 아니여
걍 집안 누군가 명의의 산에 조상 묘만 있으면 그걸 선산이라고 부르는 거시여..
조선시대부터 대대로 7대조 6대조...막 모셔저 있고 블라블라
이런것만 선산 아님 ㅋㅋㅋ
시골 산에 할부지 할무니 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선산
큰 아버지 장손이라 종갓집 제사도 가는데????????
나도 우리집 장손이여.
내 6촌 동생도 그집서는 장손이여...
주변에 널리고 널린게 장손이여..
사돈의 팔촌의 오촌 동생 당숙은 3대독자랴..
귀한 장손이랴
장손은 걍 한집안의 맏이라는 뜻 외엔 없수다.
종갓집도 걍 족보 산 시점에서....
맏이 되는 이가 그 맏아들에게 이어주고..이어주고 이어주고
이렇게 몇대 내려오면...그게 종갓집이 되는 것이지..다른게
종갓집이 아님...
가끔 티비보면 무슨성씨 몇대 손...해가지고 막 몇백년 된
한옥집 살고....그러는 거 나오는데
그런 분들이 양반 종갓집..
그리고 왕족왕족 타령하고 명문가 타령하며 그래도 양반 부심 부리는
분들에게
정말 레알 왕족이나 양반가들 제사 형태를 알려드림
일단 제사 모시는 인원만 최소 100여명 가까이 됨.
더 되는 곳들도 많음.
왕릉이나 종묘,7대조 8대조 등 묘가 많이 쓰인 선산에 모두 모임.
이런 곳 선산은 크기부터가 다르고..
선산 가까이에 재실이 있음.
재실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 같은 것인데
한옥 형태임.
여기서 여자분들이 제사 준비를 함.
출처 - 두산 백과 (효종 영릉 재실)
어르신들은 흰도포에 갓을 쓰거나 유건 등을 쓰고..
굉장한 포스로 나타나심.
갓은 알테고
이게 유건임 출처 - 네이버
그리고 서로 친분은 없지만 같은 집안 며느리라는 이유로
합심하여 일을 하는 몇십명의 며느리 되는 여자분들이 재실에서
일사분란하게 잔칫집 포스 뽐내며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준비함.
그리고 유건이나 갓을 쓸 짬이 안되는 남자 조손들이
산 잔디밭에 천막을 세우고.. 상을 펴고 제사 지낼 준비를 함
향을 피우고 뭐 하고 뭐하고..
그렇게 제사 준비를 마치면 족히 몇백의 사람들이
동시에 절을 하고..
갓이나 유건을 쓴 어르신들은 어려운 한자를 솰라솰라 읊으며
곡을 함...이런곳 제사는 정말 레알 전통 방식으로 하기 땜시롱
과정은 나도 잘 모름 ㅋㅋ 아무튼...그렇다고 함
그리고 제사 후 재실이나... 선산에 세워진 천막에 모여
일사분란 밥을 먹음.
- 이 정도 규모가 되야 아 그래도 우리집은 정말 양반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음.
왜냐하면 양반은 조선시대부터 1.9% 밖에 안되는 희귀한 신분의 자손들이
이어지고 이어지고 이어지고... 온 것이니..
그 수는 극히 드물것이며 그 드문 사람들 끼리 모여 제를 지내는 것이
당연지사...
왕족은 더 어마어마하게 지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음
왕족들은 효령대군파니 양녕대군파니 파끼리 왕릉이나 종묘에 모여서
정말 어마어마하게 제사를 지낸다고 함
막 모이는 인원수나 포스도 후덜덜하다고 (들어만 봄 본적없음..)
아무튼 고딩때 국사샘 曰 이정도 급 제사 우리 아부지가 가신다~ 손들어봐~
반 전체 고요...아무도 손 안 들음..ㅋㅋㅋㅋㅋ
나도 안 들음 ㅋㅋㅋㅋ
+(추가글)
댓글로 자꾸 집성촌 이야기 나와서 ㅋㅋㅋ
몇가지 더 추가로 적어볼게~
근데 위에 나열한 것들이 확실한 우리집은 양반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증거는 100% 아님.
이런글 올리면 그럼에도.... "아니야 그런데 우리집은 정말이야 블라블라...
우리집은 진짜 양반 맞았던듯 블라블라~"
이런 댓글들이 주르륵 달리잖아.....분명 1.9%의 비율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양반이라고 확신하지?
이유는 그래.
조선후기 일제강점기..등을 거치며
돈을 많이 번 천민 노비 양민 출신들이
양반행세를 해... 으리으리한 집을 사고
산도 사서 조상묘도 휘황찬란하게 꾸미고
재실도 크게 짓고~ 집성촌 사람들 끼리
모여서 양반들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의
제사도 지내기 시작하고...
그러면
그 자식들이며 손자 손녀들은...당연히 자신이 양반가
자식인 줄 알고 자라겠지?
그게 그 자손으로 다시 그 다음 자손으로...이어지고 이어지고..
"아니야 그런데 우리집은 진짜 양반맞다능...블라블라"
가 되는거야..
그리고 위에 성씨가 많아진 이유에 '뉴욕군' 이라는
예시를 들어서 설명해 준 집성촌 이야기 나오지?
집성촌에 살았다는 거는 그래서 오히려 빼도 박도 못하게 양반이 아니올시다
의 증거가 될 수가 있어
그저 그 동네 살았던 양반댁 성씨를 따라서
성씨를 쓴 비양반일 확률이 높은 거지.
대대로 집성촌에 살았다고 우리 양반 가문~ 오예~ 가 절대 아니란 말씀
위에 집성촌이 생겨나게 된 뉴욕군 예시를 보면 잘 알 수가 있음
조선 후기 전국 양반 비율이 1.9% 밖에 안되는데
집성촌에 사는 마을 사람들 몇백 많게는 몇천명이...
다 같은 성씨의 양반이라는 건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상하잖아?
아무튼 그렇다고.....
결론: 조선시대 인구 절반은 노비였고 나머지 절반은 양민이였으며
조선 인구 중 약 1.9% 정도만이 양반신분이였다. (왕족포함)
어차피 다 같은 98.1 인데요...
다시 결론 : 어차피 요즘은 돈 많으면 장땡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