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후보, 안전문제 말할 자격 있나
[르포] 두 달새 8명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한 현대중공업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는 '안전'과 '일자리' 공약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세월호 침몰 사고와 서울시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로 안전에 대한 투자와 정책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맞춤형 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또 기업가 출신이라는 점을 살려 일자리 창출 공약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정몽준 후보가 최대주주인 현대중공업에서는 비정규직 사용을 남발하고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어, "일자리와 안전 문제를 말 할 자격이 있는가"란 물음이 정 후보에게 제기되고 있다.
정몽준 후보는 재산이 약 2조430억원으로 정치인 중 최대의 자산가다. 지난 3월 국회 공보에 공개된 재산 내역에 따르면, 은행권 예금만 약 468억4900만원이나 된다. 정 후보의 재산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주식이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현대중공업 주식 771만7769주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 10.15%로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다. 현대중공업 주식을 포함해 그가 갖고 있는 주식의 가치는 약 1조9847억원이다. 올초에는 현대중공업이 보통주 1주당 2천원의 현금 배당을 하면서 154억3600만원을 챙겼다.
주주들에게 돌아간 현금은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흘린 땀의 결과다. 그런데 정작 현대중공업그룹 노동자들은 안전도 확보되지 않은 작업장에서 일하다가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불과 두 달 사이에 8명이 사망하고 4명이 경상을 입는 중대재해가 이어졌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최대의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에서 왜 노동자들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13일 오전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울산으로 향했다.
두 달 사이에 현대중공업 5명
현대삼호중공업 2명, 현대미포조선 1명 등
현중그룹 하청노동자 8명 작업 중 사망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진순환도로 1000번지. 현대중공업 본사가 위치한 곳이다. 방어진 앞 바다를 끼고 608만1천평 부지에서 컨테이너선, LNG·LPG선, 시추선 등 대형선박을 생산한다. 끝과 끝이 보이지 않는 중공업 담장 밖에서도 보이는 9기의 초대형 골리앗 크레인이 조선 부문 세계 1위 현대중공업의 위엄을 뽐내는 듯 했다. 현대중공업 정규직은 2만5천명이고, 2013년 매출 24조원, 영업이익 7347억원, 당기순이익 4516억원을 기록했다.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현대중공업그룹으로 범위를 넓히면 2013년 매출은 54조원이다. 울산 동구에서는 "동구는 현대왕국이다. 정몽준 왕국이다"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정문에서 인적사항을 적고 신분증을 제출하고 방문 목적을 밝힌 뒤, 미리 약속을 해 놓은 노동조합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사업장 안으로 들어갔다. 회사에서는 보안에도 무척 신경을 썼다. '촬영금지'라고 적힌 스티커를 휴대폰 전면과 후면 카메라 렌즈에 붙여야 했다.
땅!땅!땅!
철판을 때리는 듯한 육중한 기계음이 고막을 때렸다. 쇳가루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기저기서 용접 불꽃이 번쩍였다.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열기가 더욱 뜨겁게 느껴졌다. 공장 곳곳에 페인트로 '안전제일'이라고 적혀있었다. "안전 수칙은 가족과의 소중한 약속"이라는 문구도 눈에 띄었다. 노동자들이 잘 볼 수 있게 높은 곳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땀 흘리는 노동자들이다. 가족을 생각해서 안전하게 일 하라는 메세지 같았다. 그러나 오전 4시간 작업을 마치고 먼지가 뿌옇게 앉은 작업복을 털며 식당으로 향하는 중년의 노동자는 무심하게 '안전제일' 문구 앞을 지나갔다.
"위험에 익숙해진다고 할까요. 제가 30년을 여기서 일 했는데 처음에 30m 높이 난간에 올라가서 일 할 때는 바닷바람이 엄청 세서 양손으로 난간을 잡고 벌벌 떨면서 일 했어요. 나중에는 익숙해지니까 어느 순간에는 뛰어다니게 되더군요. 위험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거죠." 50대 노동자의 설명이다.
위험과의 공존은 돌이킬 수 없는 죽음으로 다가왔다. 3월 6일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에서 노동자 1명이 작업 중 철판에 깔려 사망했다. 신호수를 배치하지 않고 야간에 단독작업을 한 것이 원인이었다, 20일에는 노동자 1명이 족장 작업 중 추락해 사망했다. 현장에 안전가이드는 없었다. 5일 뒤인 25일 현대중공업에서는 족장 거치대가 붕괴되면서 노동자 3명이 바다로 추락, 1명이 죽고 2명이 다쳤다.
4월 7일 현대중공업 계열사 현대미포조선에서 노동자 1명이 작업 도중 8.6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안전난간과 추락방지망은 설치돼 있지 않았다. 21일 현대중공업에서는 LNG선 용접작업 중 화재가 발생해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쳤다. 26일에는 브라스팅 작업을 하던 노동자 1명이 작업 중 추락하다 호스에 목이 졸려 숨졌다. 28일에는 야간에 비바람이 부는 가운데 블록 운반용 트랜스포터 신호를 하던 노동자 1명이 바다에 빠져 숨졌다. 역시 안전을 위한 난간은 없었다.
사망재해 발생 후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울산 현대중공업 특별안전점검에서는 작업중지 41건, 사용중지 18건, 시정요구 375건, 시정권고 80건 등 모두 562건의 법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고용노동부는 이 가운데 83건에 대해 과태료 10억원을 부과했다.
하청 생산직이 정규직 생산직보다 두 배나 많아
족장, 도장 등 위험 업무는 하청 노동자 전담
조선소 옮겨 다니며 공정처리하는 물량팀까지 등장
고용 구조상 안전 교육 허술할 수밖에 없어
지난 두 달 간 숨진 노동자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안전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작업을 했다는 것과 죽거나 다친 노동자들이 모두 하청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인력관리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하청 노동자(비정규직)들을 사용하고 있다. 현대중공업도 예외가 아니다. 4월 말 기준 생산직과 사무직을 합한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자는 2만6593명이다. 사내협력업체 소속 하청노동자들은 이 보다 훨씬 많다. 548개 업체, 3만6841명에 이른다.
생산직 노동자만을 두고 비교를 하면 원청인 현대중공업 소속 정규직 생산직은 약 1만8000여 명, 하청인 협력업체 소속 생산직은 3만6천여 명으로 작업장 내에 하청 노동자들이 두 배나 더 많다. 하청노동자들은 불과 몇 년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은 단체협약에 따라 매월 사측으로부터 사내협력사 현황(업체수, 인원)을 받는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 협력업체수는 232개, 하청노동자는 2만3700명이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256개, 2만9000명으로 늘어났고, 2013년 말 기준으로는 359개 3만7700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산재 사고가 빈발했던 2014년 4월 기준으로는 548개 업체, 3만6841명으로 증가했다.
불과 2년여 사이에 하청노동자들이 왜 이렇게 많이 증가했을까? "조선산업 현황이 안 좋을 때 (현대중, 삼성중,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체간 수주 경쟁이 벌어졌어요. 일감은 없고 업체간 경쟁은 심하고, 그래서 저가로 라도 수주를 하자고 해서 저가 물량을 많이 수주했어요. 업체간에 서로 출혈 경쟁을 한 거죠. 이걸 갖다가 빨리 쳐 내고 고가 물량을 수주해야 하니까 하청 인원을 대규모로 투입한 거죠." 노조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청 노동자들의 대규모 투입 속에 '물량팀'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10여 명이 팀을 이뤄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소를 다니면서 단기간에 물량을 빠르게 처리해주는 팀이다. 단기공사팀이라고 부르는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석달 가량 한 작업장에서 일하면서 공정을 처리해주고 이동해 다닌다. 원청으로부터 하청을 받아 일하는 것은 협력업체 소속 하청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는데, 물량팀은 시급이 아닌 일당을 받는다. 빠르게 공정을 처리하는 게 목적인 만큼 일당이 센 편이라고 한다.
노동조합에서는 무분별하고 과다한 하청노동자 사용이 중대재해 증가와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에 하청 인원을 대규모로 투입하면서 중대재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했어요. 한꺼번에 하청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안전관리, 후생관리 등 관리가 전혀 안 되는 거죠. 빨리 빨리 물량을 처리해야 하니까 안전 교육도 형식적으로 이뤄지고요. 공정이 빡빡하게 돌아가면서 안전 보다는 생산 위주의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요. 안전을 하나하나 챙겨가면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빨리 처리하고 쉬자' 이런 분위기가 강한 거죠." (김형균 노조 정책기획실장)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내몰리는 노동자들에게 공장 곳곳에 붙어 있는 '안전제일' 표시는 허망한 구호나 다름없어 보였다. 특히, 산재 위험은 하청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정규직과 하청노동자 수가 역전되면서 예전에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던 일을 지금은 하청 노동자들이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족장, 도장 등 위험한 업무에 대한 외주화 비율이 높다. 삼성반도체 등 대기업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지적됐던 '위험의 외주화'인 셈이다.
최대 주주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 선출된 날
사내 체육관에 4천명 모여 '전사 안전결의대회' 개최
다음 날 '안전경영' 쇄신 종합대책 수립 발표
현대중공업 산재 문제는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서도 이슈가 됐다. 정몽준 후보와 경쟁했던 김황식 후보가 TV토론에서 "그동안 현대중공업 근로자 사망사고에 대해 수차례 질문했는데 말이 없다. 책임을 느끼지 않느냐"고 공세를 폈고, 정 후보는 "왜 책임을 안 느끼겠냐"라고 답했다.
12일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선출 경선에서 정몽준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로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날. 울산 현대중공업 사내 체육관에서는 이재성 회장과 임직원 등 4천여 명이 모여서 '전사 안전결의대회'를 가졌다. 그리고 13일 '안전경영 쇄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재성 현대중공업 회장, 최원길 현대미포조선 사장,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 하경진 현대삼호중공업 부사장 등 현대중공업그룹 사장단 20여 명이 회의를 갖고 마련한 대책을 보면, 현대중공업은 안전경영에 3천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또 외부기관인 안전보건공단의 종합진단을 통해 경영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협력업체와 관련해서는 안전요원을 200명 수준으로 기존보다 2배 이상 증원해 현장 안전관리에 만전을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민중의소리'와 통화에서 "노동계에서 원하는 만큼 다 하지는 못할지라도 안전 경영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한 노조 관계자는 "안전 대책은 그간에도 계속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 형식적인 대책에 그쳤어요. 일 하다 심각한 안전문제가 발생하면 노조가 작업을 중지할 수 있어야 하고, 하청 중심의 고용관계를 개선해야 합니다. 이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이걸 말하지 않는 회사 대책은 소용없는 대책에 불과합니다"라고 지적했다.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하청노조가 있어도 공장 안에도 못 들어가는 현실입니다.(하청노동자들의 노조인 하청지회 사무실은 공장 밖에 있다.) 하청 노동조합이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죠. 그래서 하청 노동자들의 권리를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해 줘야죠. 3000억원을 안전에 투자한다고요. 저희들 안 믿습니다. 실효성도 없어요. 하청노동자들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면 헌법적 권리(단결권)부터 보장해줘야 합니다. 그렇잖아요. 이제까지 안전관리를 안 해서 사고가 난 게 아니거든요"라고 말했다.
"3천억 투자한다고요? 안 믿습니다.
하청노동자 존중하면 헌법적 권리부터 보장해줘야 합니다."
노조 관계자들은 현대중공업의 안전한 작업환경을 위해서는 최대주주인 정몽준 후보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거의 신성화 돼 있습니다. 영향력이 절대적예요.", "(정몽준 후보) 말 한 마디에 모든 게 달라집니다. 위에서 오더가 내려와야 여기(울산)이 움직입니다."
공장내에서 취재를 하고 있던 중, 현대중공업에서 안전경영 쇄신 종합대책을 수립해 발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장을 나오기 전 정몽준 후보측에 전화를 걸어 현대중공업 중대재해 발생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서면으로 질의를 해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메일로 질문을 보냈고, 14일 오전 답변이 왔다.
정몽준 후보 캠프 이수희 대변인은 서면 답변에서 "산업 현장에서 사고로 인해 아픔을 겪고 있는 유가족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면서 "정몽준 후보는 산업현장이 새롭게 변화되도록 관심을 갖고 더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대중공업이 발표한 대책을 언급한 뒤 "정몽준 후보는 현대중공업의 개선대책이 잘 지켜지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며 그 외 우리 사회의 안전에 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대책 마련에 힘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13일 오후 6시 현대중공업 정문을 나서자 길 건너 맞은편에서 하청노동자들과 울산 지역 노동계 관계자들이 잇따른 사망 재해 발생과 관련해 사측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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