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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배우 신성일 폐암으로 별세...영화계 큰 별 지다

김영식구본능하늘 2018. 11. 4. 10:30

배우 신성일 폐암으로 별세...영화계 큰 별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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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11.04 04:27 | 수정 2018.11.04 04:55

배우 신성일(강신성일)이 4일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신성일 측 관계자는 이날 "한국영화배우협회 명예 이사장이신 영화배우 신성일께서 4일 새벽 2시 반 별세했다"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고(故) 신성일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전남의 한 의료기관에서 항암 치료를 받아왔으나 이날 끝내 숨을 거뒀다.

고인의 젊은시절./온라인커뮤니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고인은 1937년 경북 대구 태생으로 본명은 강신영이다. 도청 공무원으로 일하던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경북중을 거쳐 경북고에 입학했다. 그러나 가세가 기울면서 고교 졸업후 상경해 호떡장사 등으로 학비를 벌며 서울대 입학을 노렸지만 실패한 후 배우의 꿈을 꾸게 된다.

어렵게 연기학원을 다니며 배우 데뷔를 노리던 중 1957년 당시 최고의 영화제작사였던 신필림의 신인연기자 공모에서 2640 대 1의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이후 신필름의 ‘뉴스타 넘버원’이라는 뜻을 담고 신성일(申星一)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본명과 예명을 합친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고인은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후 ‘맨발의 청춘’ 등 수많은 청춘 멜로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국민배우 지위를 누렸다. 고인은 한동안 대한민국 대표 미남배우로 군림하며 ‘세기의 미남’으로 불린 프랑스 배우 알랭 드롱과 비교돼 ‘한국의 알랭 드롱’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고인의 대표작 ‘맨발의 청춘’ 포스터. 고인은 이 영화에서 일생의 짝이 될 엄앵란과 연기했다./조선DB
실제 고인이 남자주연을 맡은 횟수만 약 510회로 이는 광복 이후로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전성기 시절 한 해 동안 65편이나 주연으로 출연한 적도 있었다. 1960년대 초 고인의 출현으로 한국 영화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사랑, 캠퍼스, 뒷골목 건달 이야기 등을 다룬 ‘청춘물’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특히 단 18일 만에 만든 맨발의 청춘(1964년 개봉)은 당시 관객 동원 23만명이라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안개' '만추' '별들의 고향' '겨울여자' '길소뜸' 등이 고인의 대표작이다. 전성기 고인이 출연했던 영화는 대부분 흥행했고 주제가도 덩달아 히트곡이 됐다. '하숙생' '동백아가씨' '별들의 고향'과 같은 곡이 유명하다.

고인이 1980년 대종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연합뉴스
고인은 전성기였던 1964년 당대의 톱스타 엄앵란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결혼했다. 데뷔작 ‘로맨스 빠빠’를 비롯해 ‘아낌없이 주련다’ ‘청춘교실’ ‘새엄마’ 등 9~10편의 영화에서 상대역은 아니었지만 호흡을 맞췄던 한 살 연상의 엄앵란과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 작품은 ‘배신’이었다. 키스신 촬영에서 엄앵란에게 실제로 입을 맞춰 자신의 마음을 처음 알렸던 그는 이후 촬영 도중 벌어진 화약 폭발 사고로 얼굴을 다친 엄앵란을 극진히 간호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두 사람의 결혼은 하객과 모여든 일반 시민의 수가 3400여명에 달했고, 초청장이 엄청난 가격에 암거래되는가 하면 결혼식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호텔 측에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이 결혼식은 당시 외신에도 보도됐으며 지금까지도 ‘세기의 결혼식’으로 회자되고 있다.

고인은 정치활동도 했다. 1978년 제10대 서울특별시 용산·마포 중선거구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박경원 전 내무부 장관의 특별보좌역으로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이어 2000년 대한민국 16대 국회의원 선거에 한나라당 공천으로 출마해 당선돼 4년간 활동했다. 2001년에는 한나라당 총재특보를 지냈다.

고인이 2011년 자서전 출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인은 옥고도 치렀다. 국회의원이던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옥외 광고물 업체 수의계약과 관련해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2005년에 징역 5년에 추징금 1억 8700만원을 선고받아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됐다. 2007년 특별사면됐다.

고인은 2011년 본인의 불륜 관계를 담은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를 출간해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불륜을 저지른 유명인의 실명을 공개해 비난에 휩싸였다. 고인은 이후 불륜 폭로 발언이 자서전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욕심에서 나온 행동이었다며 부인 엄앵란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고인은 최근까지도 투병중인 몸을 이끌고 대중앞에 모습을 보였다. 올해 3월 문화방송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 출연해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들을 다독이며 가족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을 드러냈다. 이어 올해 10월에는 건강 악화 속에서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는 등 끝까지 영화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였다. 고인은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20대 국회 강석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고인의 조카다.

고인이 올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OSEN

100자평

문희성(mik****)
2018.11.0406:29:47신고
my condolence! 안녕히 가십시요.
조남진(cnc****)
2018.11.0406:05:27신고
1950년대 남우주연은 최무룡이 도맡았다. 1960대 초반부터 신영균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가 1964년 부터 오랫동안 신성일 시대가 되었다. 신성일의 인기는 사병들이 지어부르는 노래중 "두들기면 목탁소리 난다 율부린느 머리, 숲속에서 연해하다 들킨 신성일과 엄앵란"이란 가사를 보면 알수 있다. 많은 칭찬과 비난을 받으면서 한시대를 풍미했던 신성일도 세월따라 가버렸다.
조정래(cho****)
2018.11.0406:00:23신고
시골에 신성일씨 영화를 들고 가설극장이 들어오면 ......보고 싶어도 돈이 없는 아이들은 그 영화가 마칠 때까지 천막 밖에서 숨죽이며 작은 틈으로 보이는 쪼가리 화면을 보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인생무상입니다.....저세상에서도 좋은 배우로 영민하시길 바랍니다.
강래성(seon****)
2018.11.0405:49:49신고
소생된것 잠시였구나.. 명복을 빕니다,
Hyung-YulCho(countrym****)
2018.11.0405:37:57신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77년도에 미국에 와서 한국에서 수입해서 파는 싸구려 맥고 모자를 샀는데 머리 둘레에 영화 필름 조각으로 장식이 되었었읍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인이되신 신성일시와 엄앵란씨가 무스탕(그때의 발음)을 타고 가는 장면이었읍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04/2018110400019.html


출처 : 쟈니와꼬맹이
글쓴이 : mjbou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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