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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간단히 보는 한국 대통령의 일생 7편 - 최규하 대통령

김영식구본능하늘 2015. 9. 16. 20:20

간단히 보는 한국 대통령의 일생 7편 - 최규하 대통령|   심심풀이방

추행죄 | 조회 218 |추천 0 | 2012.08.1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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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대 대통령들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다루려고 함.

대통령 당선 이후의 문제는 정치 문제이므로 건들지 않겠음.

기회가 된다면 대한민국 내 역대 대통령들을 모두 서술해보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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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이명박 대통령 : http://www.ilbe.com/131829296

2편 노무현 대통령 : http://www.ilbe.com/131983233

3편 김대중 대통령 : http://www.ilbe.com/132104013

4편 김영삼 대통령 : http://www.ilbe.com/132144877

5편 노태우 대통령 : http://www.ilbe.com/132416051

6편 전두환 대통령 : http://www.ilbe.com/132448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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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 최규하(崔圭夏) 1919. 7. 16. ~ 2006.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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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7월 16일,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에서 출생하였다.

할아버지에게서 한학을 배웠으며, 1928년 10세의 나이로 3학년으로 원주보통학교(현 원주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32년 3월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935년 11월,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홍기와 결혼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고등사범학교(현 쓰쿠바대학)에서 영문학과를 전공하였고

일본이 만주 지방에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으로 가 국립대동학원에 입학, 1943년에 졸업한다.

광복 후인 1945년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있다가 

1946년 미 군정청에 발탁되어 농림행정에 종사하게 된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되자 농림부에 보직되어 근무하게 된다.

최규하는 앞서 말했다시피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는데,

그 덕으로 외무부 장관 변영태에 기용되어 외무부 통상국장의 자리로 옮기게 된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는 주일대표부 총영사,

한국 전쟁 종전 이후인 1957년에는 주일대표부 참사관을 지냈으며

1959년에는 주일대표부 공사로 승진, 그 해 귀국하여 외무부 차관이 되었다.

4.19혁명이 발생하자, 외무부 차관직을 사임하였으나

5.16군사혁명이 발생하자, 박정희에게 기용되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외교담당 고문이 된다.

박정희가 집권중이던 1967년, 외무부 장관으로 승진하였고

'조용한 외교' 를 표방하면서 외무행정조직의 강화, 통상외교를 강화했다.

<외교왕 최규하 1>

1968년 1월 23일, 미국의 푸에블로호가 북괴 해군초계정에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푸에블로호 사건)

미국은 인질들의 안전을 위하여 북괴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게 되는데,

박정희는 이 사실을 알고서 크게 반발하고서는 독자적으로 북괴를 공격할 준비
를 한다.

그러자, 미국에서는 깜짝 놀라 한반도에서의 전면전을 막고자

'국방력에 보탬이 될 수 있게 원조를 약속하니 선제공격하지말라.' 고 하며

사이런스 밴스
를 특사로 임명하여, 한국에 파견한다.

이에, 박정희는 최규하를 보내 협상을 하게 하는데

워낙 군사부문은 민감한 부분이라 그런지, 두 사람의 대화는 밤이 새도록 이어졌다.

최규하는 커피 20잔을 먹고, 재떨이를 6번이나 갈아치우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1억달러 규모의 군사원조를 약속받게 된다.


이 때, 최규하는 미국의 전투기은 F-4 팬텀 또한 요구하였고 특사 사이런스 밴스는 F-4팬텀의 공급 또한 약속한다.

그리 하여 우리 나라는 당시 F-4팬텀 도입을 위해 힘쓰던 일본보다 더 빨리 F-4팬텀을 보유하게 되었다.

사이런스 밴스는 귀국하면서 말하기를,

"최 장관(최규하)의 애국심, 쇠고집, 인내력 그리고 그가 계속 뿜어대는 담배연기에 두 손을 들었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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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왕 최규하 2>

1968년 6월 28일, 외무부 장관 최규하가 포터 주한 미국대사를 면담했다.

이 때, 대한민국 측은 미국에 핵공격 등에 대한 안보공약을 재확인하는 각서를 미국에 요구했는데

포터는 말하기를,

"한미상호조약으로 된거 아닙니까?"

"한국 쪽에서 NPT(핵확산금지조약) 가입을 질질 끌다가 불쾌한 그룹(지금으로 치면 악의 축 정도)에 끼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라고 하며 오히려 최규하, 대한민국을 협박하는 논조로 말을 한다.

그러나 최규하는 말하기를,

"가장 맹방인 한국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으면서 귀하가 무슨 대한 외교를 잘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 날, 포터 주한 미국대사는 최규하가 요구한 안보공약 재확인 각서를 들고 찾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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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7월 4일,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이후에 남북조절위원회 위원이 되어 평양에 다녀왔다.

1976년 3월, 국무총리에 기용되었고 1979년 3월, 국무총리에 재선출되었다.

국무총리 재직 중 근검절약,
 깨끗한 공직생활을 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고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결정, 박정희에게 건국공로훈장 중장(현 대한민국장)을 추서한다.

1979년 12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
되었고

국민들에게 민주적 선거절차에 따른 새 정부 출범을 약속하였으나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에 의한 12.12 쿠데타로 실권을 박탈 당하게 된다.

1980년 8월 16일, 최규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하야한다.


대통령 사임 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저택에서 생활하였으며

1982년, 독립기념관 건립기금을 기부하였고

1985년,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백낙준의 추모 예배에 참석하였다.

1991년 이후부터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의 의장이 되었고,

1993년에 의장 연임 요청을 받았으나 사양한다.

2006년 10월 22일, 향년 88세의 나이로 서거한다.

최규하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루어졌고, 최규하의 장례식에는 2,000여명이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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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줘서 고맙당

이 자료는 위키백과에 근거하여 서술되었으며

외교관 일화는 http://1stcabinet.tistory.com/470 를 참고하였음.

최규하는 대통령 임기가 짧아서 우리들에게 별로 기억되지 못 하는 대통령이지만,

외교부에 재직중일 때 초강대국인 미국, 

우리가 어떻게 보면 뒤를 핥아야 할(?) 미국이라는 국가에 뚝심 있고 배짱 있는 외교를 펼친 것을 보면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원수는 물론, 그 아랫사람도 청렴하고 뛰어나니 우리 나라가 이렇게 발전하게 된 것이 아닐는지...
-일베-


 

<출처- 마르디아님 블로그>

출처 : waller79
글쓴이 : Ja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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