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충남 아산시] 윤보선대통령묘소

김영식구본능하늘 2015. 9. 16. 20:15

 

 

촬영일 : 1960년 08월 14일

촬영장소 : 대한민국 서울 청와대

 참석자 : 윤보선 대통령

관련내용 : 윤보선 대통령 존영.

 

 

                                            제2공화국 윤보선 대통령 취임식

 

 

 

4·19 혁명 후 60년 8월 대한민국 4대 대통령이 된 남편 해위 윤보선, 두 아들 상구·동구와 함께 1년 8개월 간의 청와대 생활을 시작한 공덕귀 여사.

 

윤보선 대통령은 4·19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이 붕괴된 후 대통령선거에 민주당후보로 입후보하여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된 정치가이다. 5·16군사정변으로 인하여 1962년 사임하고, 1963년 민정당을 창당하여 그 해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출마, 박정희와 겨루었으나 실패하였다.

촬영일 : 1990. 7. 23.

촬영지 : 대전광역시 > 서울, 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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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尹潽善, 1897년 8월 26일 ~ 1990년 7월 18일)은 대한민국의 정치가이자 전 대통령이다. 국회의원1948년 12월 15일부터 1949년 6월 5일까지 서울 시장을 지냈고,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1960년 8월 13일부터 1962년 3월 23일까지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 일시적으로 참여하였고, 신규식의 권고로 영국 유학을 다녀왔다. 미군정기제1공화국의 야당 정치인이었으며 국회의장 이승만의 비서관과 서울특별시장, 상공부 장관,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거쳐 제2공화국에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대통령 사퇴성명을 발표했다가 민주당 정권이 붕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군부에서 대통령직에 있어달라는 요구를 수락, 사퇴성명을 번복했다.

1962년 3월 하야 이후부터는 반독재 야당 지도자로 활동하였으며, 박정희를 군부 내 좌익 프락치라고 규정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5대 대통령 선거제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기도 하였다. 이후 한일회담 반대운동, 민주회복국민선언, 명동구국선언 등에 참여하였으며, 군사정권하에서 여러번 기소와 재판에 회부되었다. 조선 선조 때의 문인인 윤두수의 후손으로 대한제국의 관료 윤웅렬의 종손이며 윤치호의 종질이다.[1] 친일파인 윤치호, 윤치왕, 윤치창은 그의 당숙이었고, 윤치영은 그의 숙부였으며 영선군의 사위 윤원선은 그의 동생이었다. 윤일선, 윤영선 등은 그의 사촌이었다.

그는 임시의정원의 최연소 의원이기도 했고, 허정, 이갑성과 함께 3.1절광복절 기념식 때 늦게까지 초대된 독립운동가 중의 한사람이기도 하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5·16 군사 정변 협력 논란이 양립하고 있다. 5·16 군사 정변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아왔으나 제3공화국제4공화국박정희의 라이벌이었으며, 3공과 유신시절 내내 민권투쟁에 앞장섰고, 각종 사회사업에도 참여하였다. 김영삼·김대중이 등장하기 전까지 야당을 이끌었으며 '선명야당'을 강조하였다. 본관은 해평(海平)이고, 자(字)는 경천(敬天), 호(號)는 해위(海葦)이다. 해위라는 호는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 스승인 신규식이 지어준 것으로 "바닷가 갈대는 바람에 휘날려도 꺾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칭타칭 '정신적 대통령', '영국 신사', '재야 대통령'으로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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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한민국무공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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